김여정의「이집트」
나
이제
몸피 잘 생긴
배롱나무를 보아도
혀를 날름 내밀어 보이며
"메롱!" 하고 싶어지면 안되겠지!
나 이제 넘실대는 청동의 파도를 보아도
혀를 날름 내밀어 "메롱!" 하고 싶어지면 안되겠지!
나 이제 마주하면 가슴 뜨거워지는 늠름한 적송赤松 만나고도
혀를 날름 안으로 말아 넣으며 "메롱!" 하고 싶어지면 안되겠지! 안되겠지!!
내가 이집트이니까
내가 나일강이니까 내가 피라미드이니까
내가 단연 이집트가 아니니까, 글쎄 아니니까
내가 이집트와 불구 대천 사돈의 팔촌도 아니니까
(황금새의 왕국은 "메롱!" 으로 멸망하니까)
ㅡ『문학과 창작』 2010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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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란 벽돌들이 벽을 만들기 위하여 던져진 것처럼 벽돌과 벽돌의 접합과 같은 단순하게 이루어진 관계가 아니다. 함께 던져진 요소들, 율격이나 압운(押韻)이나 비유적 언어나 의미나 그 밖의 것들이 결합된 가장 친근하고 근본적인 관계인 것이다. 가장 근본적이고 친근한 관계란 사물화 이전의 세계, 혹은 세계화 이전의 사물을 의미한다. 이러한 원형적 세계에 상상력이 개입될 때, 시는 언어가 가진 한계를 넘어 세계를 모방하거나 재현해내는 방향성을 보여 준다.
김여정의「이집트」는 상상력이라는 질료의 다양성과 우수성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적잖은 연령임에도 이처럼 활달한 상상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은 시에 대한 애정이 여전히 뜨겁기 때문일 것이다. “시는 상상과 정열의 언어”라는 <해즐리트>의 말처럼 다이내믹하게 시공간을 넘나드는 시말들은 <맥아더>장군의 격언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를 상기시켜 준다. 김여정의「이집트」는 이처럼 시들지 않는 열정을 펼쳐 보임으로써 시적 상상력은 연령과 무관하다는 지표를 보여준다. 상상력의 발원지는 여러 갈래겠지만 시의 형태와 내용 두 가지 측면에서 상상력의 실체를 음미해보기로 하자.
시의 외형적 모습을 이루고 있는 것은 나무 형태이다. 자세히 보면, 세 개의 피라미드가 상하로 놓여 있는 모습이다. 생명력으로 표상되는 나무와 무덤의 한 형식으로서의 피라미드를 동시에 보여준다. 4각형의 토대를 지닌 측면은 3각형을 이루며, 각 측면이 한 정점에서 만나 방추형을 이루고 있는 피라미드처럼 이 시는 치밀한 계산 아래 구축해놓은 언어의 건축물인 셈이다. 빈틈없는 상상력과 열정을 확인케 하는 구조물인 동시에 시에 대한 실험적 행위며 유희적 기능마저 아낌없이 보여준다. 독자들의 상상력을 강타하는 그 순간의 환희와 열정이 어찌 시인만의 것이겠는가, 시인의 손가락에 신탁한 조물주의 솜씨를 엿본 듯, 질감이 살아있는 시를 읽는다는 것은 독자의 기쁨이며 시의 부력에 감응하는 소중한 경험인 것이다.
시의 내용면으로 들어가 본다. 김여정의「이집트」에서 우선 보이는 것은 여성성이라 하겠다. 시인은 이집트를 여행하던 중, 피라미드를 보고 배롱나무를 연상했을 수도 있다. 아니 ‘몸피 잘 생긴 배롱나무’를 보고 이집트를 생각 했을 수도 있겠다. 先後가 어찌 되었건, ‘몸피 잘 생긴 배롱나무’에서 발현된 상상력은 ‘넘실대는 청동의 파도’에서 ‘늠름한 적송’으로 확대된다. 모두 건장하고 잘 생긴 남성을 의미하는 메타포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상상력의 근저는 생체리듬에 기인한다. 이 모두를 구축한 것은 몸속을 흐르는 여성성이다. 여성에 있어 상대적 젠더인 남성은 자연, 혹은 신이 부여해준 선물이다. 마음에 드는 선물을 받으면 감사의 표시를 하는 것이 人之常情이지만, 이러한 관례에 대해 시인은 역설의 미학을 드러낸다.
‘메롱’은 배롱나무에서 기인된 단어인 동시에 동심에서 발로된 상상력의 산물이다. 동심이야말로 상상력을 유발하는 근원지라는 것을 시인은 부각시킨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의태어는 깊은 사유로 무거워지기 쉬운 시를 풍선처럼, 구름처럼 날려 보낸다. 이미 시를 가지고 노는 경지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부정의 부정은 긍정을 낳듯 ‘메롱’ 이라는 도리질은 순수한 사랑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또 한 편, ‘메롱’ 이 지닌 해학적이고도 역설적인 의미는 부정에 부정을 거듭하면서 어머니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고 성찰하는 역할을 지니기도 한다. ‘메롱’ 속에 속마음을 숨긴 여성성은 스스로를 다독이며 사랑의 결실을 원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제목에서 보듯 이집트, 다시 말하면 모성이라는 거대한 물줄기를 지나왔기 때문이다. 이 시 속에 드러난 이집트는 기원전 수천 년의 먼 옛날로부터 기원 전후에 이르기까지 나일 강 유역에서 번영을 누린 문명의 발상지로서 피라미드와 같은 숱한 유적들은 거느린 고대 국가를 지칭한다. 총길이 6,671km인 나일 강은 남반구의 부룬디 ·탄자니아 국경 부근에서 강어귀까지를 포함하며 유역면적은 아프리카대륙의 약 1/10을 차지한다. 아프리카 많은 나라의 젖줄을 대는 강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은 어머니라는 존재가 한 가정을 이루는 국가이며 젖줄이며 무덤이기도 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을까.
김여정의「이집트」는 이처럼 모성이라는 총체적인 개념을 진술로 천착하면서 그러한 모성을 지니지 못한 개인에 있어서는 반성의 미학을 보여준다. 시적 재미와 깊이가 교묘하게 어울린 절창을 더듬는 동안 시인의 개성이 넘쳐흐르는 시공간이야말로 누구도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神의 영역처럼 느껴졌다. /깅영은
ㅡ<문학과 창작>2010년 가을호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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