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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의 리뷰

[시로 읽는 삶]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by 너머의 새 2019. 2. 8.

[시로 읽는 삶]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조성자 / 시인

                                               [뉴욕 중앙일보] 발행 2018/03/14 미주판 15면 기사입력 2018/03/13 17:09


 당신의 여름을 폐간합니다 수습이 필요하면 봄은 남겨두기로 하죠, 제주행 비행기를 탄 날, 폭설을 만났네// (...)온실 속의 꽃들은 어떡하나, 이미 청탁한 봄을 철회해야 하나, 몇 권의 봄을 궁리해온 사람들은 하느님을 외치네// (...)지상의 어떤 나무에게도 목숨 내건 봄이 있었네 봄이라는 혁신호가 있었네// 마른 수피에 세 살이 돋는 것이 혁신이라면 그대여, 정치도 역사도 어떤 학문도 구태의연한 페이지는 폐하는 것이 옳지 않겠나 -강영은시인의 '데드 존' 부분


요즘 사회 일각에서 일고 있는 미투 운동은 상당히 충격적이고 우리를 슬프게 한다. 연일 터져 나오는 기사들을 보면서 내일은 또 무슨 일이 터질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아주 오래 곪은 화농들이 여기저기서 진물로 흐른다. 남자들의 가부장적 권위에 맞선 여자들의 용기가 연대감을 갖게됐다. 미투 운동은 새로운 젠다 인식의 전환점을 만드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얼마 전 통계를 보니 (한국의 경우) 육군사관학교는 정원의 10%를 여자생도로 뽑는데 경쟁률이 무려 49.5대 1이나 된다고 한다. 해군사관학교의 경우도 비슷해서 60대 1의 경쟁을 뚫어야 합격된다는 것이다. (2016년) 그리고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통계를 보면 외무고시 여성합격자 비율은 70.7%라고 한다. 법조인 24.1%, 의사 25.1%, 국회의원 17.0%, 초등학교 교사는 77.0%를 여성이 차지한다. 미국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미국노동통계국(BLS)에 의하면 전문직여성의 비율이 50.6%를 넘었다고 한다.


여성의 사회 진출은 이처럼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전문직에서 여성의 도약은 눈부시다. 그럼에도 사회적 약자로서 수 없는 성적 수치심을 느끼면서 그녀들이 살고 있다니 기막히다. 요즘 여성들의 직장 내 환경은 내가 직장생활을 하던 70년대 후나 80년 초보다 훨씬 나아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완벽한 양성 평등까지는 아니어도 인간으로서의 자의식을 갖고 동등하게 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성들이 권위적 혹은 위계적 관계 안에서 성적 수치심을 느끼는 일이 많다는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으며 분노를 자아내게 한다.


남성에게 여성은 무엇인가. 그렇게 만만한 취급을 받아야 할 자들인가. 여성은 존귀한 자들이다. 여성은 누군가의 어미가 될 자들이다. 농(弄)의 대상이 아니라 지켜야 할 대상이다. 존중받아야 마땅하고 존귀한 자라고 일컬음을 받을만한 충분한 존재다. 여성의 몸을 성적 대상으로만 보는 남자들의 그릇된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진짜 좋은 세상은 도래하지 못한다. 많은 여성이 수치심을 느끼는 불행한 사회라면 그건 남자들에게도 심히 불행한 일이다.


일상 속에서 남자와 여자의 신체적 다름을 가르치고 여성의 몸은 그렇게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려줘야 한다. 제도적 교육체계가 마련되어야겠지만 아마도 아들을 키우는 여성들의 몫도 크다 하겠다. 가정 안에서부터 여성의 존귀성이 인정되어야 한다.


얼마나 많은 봄이 목숨을 내건 혁신을 도모해 왔는가. 적폐는 청산되어야 한다. 인습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문화적 특성이라는 빌미로 음지에서 기생하던 구습들, 사람 사는 세상의 풍속도라 여기며 자행되던 그릇된 행동들은 뭇매를 맞아 싸다.


미안하다는 가해자들의 궁색한 사과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말 저들은 미안해하고 있는 걸까. 구태의연함이 몸에 맞는 옷처럼 편안해진 세대의 악습이 타파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