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강영은
저~기, 꼬마돼지 베이브가 걸어가네
줄줄이 발자국을 꿴 행렬 뒤에서 뒤뚱거리며 촐랑거리며 구정물에 코를 박기도 하며
우릿간으로 돌아가듯 천진스럽게
진열장에 놓인 소시지처럼 목에 맨 분홍 리본이 돋보이네
저~기, 저녁연기에 훈제된 노을이 베이브를 끌고 가네
뒤통수에 화살이 꽂힌 아이처럼 그 아이를 자신의 아이에게 먹이려는 식인종의 입처럼
커다란 아가리를 지닌 저녁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모른 채
신명이 난 베이브는 그저 꿀꿀, 꿀꿀, 말을 바꾸지 않네
내 안의 육식동물에게 구워지거나 삶아질 뿐인 세상을 구걸하지도 않네
저~기, 노래하는 돈들이 걸어가네
목청을 돋우며 멱 따는 노래 부르며 죽는 시늉도 하네
(타잔이 10원짜리 팬티를 입고 20원짜리 칼을 차고 아아아~)
돈이 되지 못한 살점들은 폭포수처럼 구덩이 아래로 떨어지네
시꺼먼 돈의 타는 연기가 이 땅의 창자를 채우네
뚝뚝 떨어지는 기름기를 불편해 하는 우리들의 창자 속에는
애당초 애완돈이란 없었네
오~ 베이브, 한 개의 손가락이 폭탄 단추를 누르기 전 잠깐, 아주 잠깐, 너를 위해 우네
썩은 내를 풍기는 나를 위해 우네
가스실로 도마 위로 죽음을 밀어내는 종족의 잔혹사에 대해
붉은 깃발을 내걸거나 혁명을 선동하지 않는 나는 귀가 흐려진 강물
오탁의 피가 두려운 귀가 되어 우네
끝나지 않는 피의 노래가 귀속에서 넘쳐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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