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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등 바다의 등

독도

by 너머의 새 2015. 9. 7.

 

 

 

독도/강영은


도동항 선술집에서 막걸리를 주문하니
막걸리를 따라 마시라고 막사발이 나온다
탁자위에 엎어놓은 막사발, 울퉁불퉁한 모양새가
독도다

도동항 방파제에서 바라다 보이는
독도가 막사발이다

매끄러운 살결도 꽃다운 꽃송이도 품지 못했지만
지나가는 바람과 구름에게 출렁이는 달빛과 별빛에게
가마우지와 괭이갈매기에게
동해바다 푸른 물결을 아낌없이 나눠주는
갈매빛 막사발이다

밥그릇이 되었다가 국그릇이 되었다가 바루가 되기도 하는
막사발을 맨 처음 빚은 이는
흙의 표정을 지닌 이 땅의 도공,
막걸리 한 사발로 족한 그의 허기가 흙의 몸으로 다시 태어난 것일까

다께시마, 다께시마,
가깝고도 먼 나라에서 불어 닥치는 샛바람소리
귓전을 때리는 오늘, 우산과 무릉의 물결을 다시 읽는다

뿌연 물결 넘실대는 동해가 커다란 막걸리 동이이다

햇살 한 덩이 누룩처럼 풀어진
동해표 막걸리를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서로 나누는
동도와 서도

독도는 여간해선 깨어지지 않는 조선 막사발,
푸른 탁자위에 엎어놓은 막걸리 사발이다
훔쳐갈 수 없는 이도다완*이다.


* 일본 국보 제26호로 교토의 한 사찰에서 보관중인 '기자에몬 이도다완'. 이 사발은 원래 조선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일본에 건너간 뒤 일본 최고의 다기(茶器)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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