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슬/강영은
나는 드디어
말상대를 고안해냈다
거기 누구 없소? 소리칠 때
누구도 들을 수 없는 나밖에 들을 수 없는
목소리를 만들어냈다
내 귀의 바깥은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
내가 섬일 때
날다가 지친 갈매기들이 섬에 집중할 때
갈참나무 잎사귀처럼 침몰하는 귀가
저절로 닿는 심연, 그 아득한 깊이에서 들려오는
존재의 목소리
그것이 설령,
내 몸의 줄기에서 뻗어나간 것일지라도
놀란 흙 밖으로 튀어나온 그것을
나는 지슬*이라 불렀다
그럴 때 나는
불타오르는 산이고 쏟아지는 빗줄기이고 숲을 뒤덮는 바람이고 계곡에 넘쳐 흐르는 물
나는 드디어
나의 고독과 대화하는 나를 가지게 되었다
나의 예언은 어디에서 오는지
나의 방언은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마침내
감옥이고 차가운 별이 되고 마는
나의 독백을
대화체로 바꾸어주는 시(詩)를 가지게 되었다
흙 무덤에서 파낸 그것을
나는 지슬이라 불렀다
*지슬 감자를 뜻하는 제주어
『현대시』 2022년 10월호 ‘현대시가 선정한 이달의 시인’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