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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의 해설

그 리움의 거리를 측량하다

by 너머의 새 2024. 11. 15.

그리움의 거리를 측량하다/강영은

                -오승철 시집 <다 떠난 바다에 경례>를 읽고

 

오승철 시인은 절절함과 신명이 묻어나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언어로 보고 느끼고 살아온 존재의 본질과 현상 즉, 삶의 모든 풍경을 유감없이 끄집어내는 시인이다. 다시 말해 사람의 마음을 단숨에 베는 단검이 그의 시 속에 들어 있다는 말이다.

 

그가 휘두르는 언어의 광휘(光輝)는 한마디 말이 수천 마디의 말을 능가하는 미학임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번 시집에서는 그러한 그의 미학이 정점에 다다른 듯 여겨진다. 무위(無爲)의 도량처럼 폭넓은 서정이 사람의 마음을 단숨에 끌어안는 시적 행보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서시(序詩)로 자리 한 ​다음 시를 보자. 판소리 한마당을 집약해놓은 듯한 절창이며 완창이다. 이 시 하나가 이번 시집의 모든 노래를 이끌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그래, 그래 알겠더냐

날아보니 알겠더냐

 

그래, 그래 알겠더냐

매운 맛을 알겠더냐

 

한 생애

그리움으로

붉어 보니 알겠더냐

-<고추잠자리. 22>전문

 

 

이 시에서 보면, 시인의 삶이란 고추잠자리에 다름 아니다. 고추잠자리의 한 생이 다다른 저녁이 그러하듯, 시의 이상향을 향해 한 생애 오로지 '그리움으로 날아본' 시인의 생이 붉은 노을처럼 처연하다. 이는 시인의 운명이 어떠한 상황에 직면해 있어도 살아있는 동안 감내해햐 할 것임을 단적로 보여주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 정점이 어디인지, ‘시인의 말’에 나오는 ‘바다’를 주목해보자.

 

-고구려 시대에도 해녀들이 존재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제 대물리며 사천 년간 섬을 지켜온 그들이 퇴장하고 있습니다.'/자욱했던 숨비소리도 사라지고 불턱의 잔불들도 꺼져가고 항일 운동을 펼쳤던 그 기개만 역사 속에 남았습니다/ 상군 해녀였던 어머니도 떠나갔습니다// 저 텅빈 바다에 무엇을 바칠까 하다가 그냥 거수경례나 하고 돌아갑니다. - <시인의 말>전문

 

제주도 태생인 시인에게 '바다'는 시인이 모든 것을 바친 곳이다. 자신의 기원인 그 바다를 향해 시인이 무엇을 말하고자 한 것인지시인의 말과 연결된 다음시에서. 출렁이는 파도처럼 울음 우는 시인의 절규를 듣는다.

 

-어디서 어디 까질까, 서귀포 칠십리는/섬들을 한 바퀴 도는 그 거리가 그쯤이겠고/이 땅의 그리움 찾아 나선 길도 칠십 리//그래! 어떻던가 거기에는 있던가/삼팔선 넘어서면 칠십 리 더냐, 천 리 더냐ㅡ<서귀포 칠십리> 부문

 

‘칠십리’는 원래 정의현청이 있었던 성읍 마을에서 서귀포 포구까지의 거리적 개념으로 사용되었던 말이다. 오늘날에는 서귀포의 아름다움과 신비경을 대변하는 고유명사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 시집은 추창조된 ‘칠십리’로 초대하는 초대장인 셈이어서 이 시집을 읽는 독자들은 이상향으로 묘사되는 시의 완결점, 혹은 생의 완성을 향하여 그리움의 거리를 측량하는 측량 기사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서귀포 칠십리’는 시인에게 있어 자신이 낳고 자란 “섬들을 한 바퀴 도는 그쯤”에 있는 물리적 거리이기도 하지만, 시인이 그리움을 찾아 헤매는 심정적 거리이자 심미적 거리로써, 천 리 밖도 ‘칠십리’로 지칭되는 거리이다. 시 속의 표현들을 빌려서 얘기하자면, 시인이 닿고자 하는 곳은 “삼천 년 해녀 물질 끝나는 바다” 건너, “남극 노인성”이 보이는 하늘, 그 너머까지도 “멍석윷 흩뿌린 길을 숙명처럼 끌고” 가는 “그리움의 끝”이 아닐까 싶다.

 

시인은 고추잠자리나 까투리, 장끼, 애벌레 울음소리, 붉은오름, 쌍계암 목불, 절울이오름, 명치동산, 삼포, 종달, 오조리, 망오름, 우성강 등과 같이 자신을 둘러싼 온갖 인연을 호명하며, 갈무리하며, 그 길을 걸어 “그리움의 끝에 결국 온 것이다, 올 곳에 온 것이다”라고 토로한다.

 

링거액을 주렁주렁 단 참나무처럼 당도할 곳 없어도 “그렇게 가야 한다”고 마음 다지는 세계, 시인이 자각하는 현실보다 더 내적이며 더 구체적이며 더 현실적으로 이미지화된 그곳이야말로 새로운 삶의 징표(徵表)가 될 수 있는 시인의 이어도일 것이다. 그 길이 얼마나 험한 길이였는지 다음 시에서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 결국 온 것이다 올 곳에 온 것이다/허랑방탕 한세월 여권 한 장 없어도/제주와 서귀포시가 맞닿은 곳에 온 것이다// 종달리 바닷가는 그리움의 끝이다/플라스틱 하얀 의자가 파고드는 모래톱/우도와 지미봉마저 바람이 버렸을까// 횟집에 얼핏 들러 돌아선 우도 유람선/그렇게 가야 한다 당도할 곳 없어도/이왕에 여기 왔으니 한마디는 뱉자./씨이발 - <종달>전문

 

“시는 새벽에 엄습하는 어두운 그림자, 죽음――그것을 이기는 기도, 삶 자체의 가장 순수한 보람의 사랑보다도 어느 의미에서는 더 충족적이며 순수한 자각과 생명 욕구의 가장 포괄적인 발현일 수 있는 것이다.” 라고 한 박두진(朴斗鎭)선생의 말처럼 “씨이발”이라는 육두문자를 쓰는 골계미의 실체가 무엇인지, 구태여 설명하지 않더라도 많은 시인들이 공감하리라 생각된다,

 

그 정점에 서서 자신의 생에 되돌아보았음인가, 다음의 시는 “시는 마치 손가락 사이에서 빠져나가는 모래와 같은 것이다.”라고 말한 ‘릴케’의 전언을 생각나게 한다.

 

지우려면 싹 지우고 그냥 돌아갈 일이지/삼방산과 해안변에 발자국으로 써 놓은 시/파도와 비바람마저 씻지 못한 저 발자국들 -<발자국의 시> 전문

 

시인은 “지우려면 싹 지우고 그냥 돌아갈 일”이라고 자신의 과업(課業)에 돌멩이를 던져보지만, “파도와 비바람마저 씻지 못한 저 발자국들”을 남긴 채 끝내 버릴 수 없는 그 길을 가는 것이 자신의 숙명이자 정점임을 상기시킨다.

 

“그리움이라는 환부를 도려내지 못한 아픔”이 얼마나 클지, 더욱 날카롭게 날을 벼린 이번 시집을 읽는 동안, “눈물창창”한 생애를 메고 가는 시인의 뒷모습을 본다.

 

잎 다 진 참나무에 과일 몇 일렁인다

초겨울 어스름 저녁 저게 무슨 과일일까

후루룩 날아오르는 떼까마귀 여섯 마리

 

링거대 링거액이 주렁주렁 달렸다는

어느 선배 그 전화에 우린 통쾌하게 웃었다

그렇게 많은 링거를 달아 본 건 처음이란다

 

본질과 현상이라 쉽게 말하지 마라

링거가 많을수록 전과가 많다는 뜻

그 선배 어깻죽지가 가벼워졌으면 좋겠다

 

-<첫 경험>전문

시인의 삶이 “그렇게 많은 링거를 달아 본 건 처음”이라는 “그 선배 어깻죽지”처럼 가벼워졌으면 좋겠다고 따라 써본다.

눈발이 펏들펏들

서귀포 동문 로타리

시외버스 끊겼지만 국밥은 말고 보자

택시비 그게 문젠가 ‘비틀’ 길을 메고 간다

 

2022년 12월 23일 오후 7시 25분

이 길이 십 년 후면 나를 기억해 줄까

변변한 시 한 편 없이 찾아온

서귀포 한 쪽

- <서귀포 한 쪽>전문

 

위암이라는 병마 앞에서 허물어져가는 육신과 정신을 곧추세우며 한자 한자 써내려간 오승철 시인의 이번 시집은 이 모든 것들을 진설하고 있는 밥상 앞에 앉아 “슬픔으로 먹는” “서귀포 동문 로타리 닭내장탕” 이며 고향을 품은 망오름에 내리는 “2022년 첫눈”이다.

이러한 상찬을 베풀어준 시인에게 깊은 감사와 축하를 드리며 하늘마저 가볍게 내려놓는 닻처럼, 새연교 뱃고동 소리를 함께 들을 수 있는 “10년 후”를 기약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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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철/서위포 위미에서 태어나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겨울귵밭>으로 등단하여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시조집으로 <사람보다 서귀포가 그리울때가 있다> <오키나와의 화살표><터무니 있다> <누구라 종일 흘리나> <개닦이>등 5권을 펴냈고, 단시선집으로<길 하나 돌려 세우고>우리시대 현대시조 동인 100인선<사고 싶은 노을>8인 8색 시조집<80년대 시인들>등을 냈다. 중앙시조대상, 오늘의 시조 작품상, 한국시조대상, 고산문학대상등을 받았다. 오늘의 시조시인회의 의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