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말의 서정과 감각의 촉수 /강영은
- 양시연 시집『따라비 물봉선』해설

오늘날, 언어만을 인간의 의사소통 도구로 특정한 데에는 언어의 보편적 특성이 작용한다. 임의성, 분절성, 창조성, 역사성, 전위성, 문화적 전달 등이 그것인데, 언어가 가지는 이러한 특성은 시인들에게 있어 시 쓰기의 중요한 기점이 되며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도 중요한 소통체계가 된다.
인간이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이 신호체계를 사용할 수 없는 이들이 있다. 언어는 더 이상 유용한 것이 아니게 된다. 그때 우리는 신체의 동작, 외양, 접촉행위, 유사언어, 등을 수단으로 뜻을 전달하고 표현하게 된다. 즉 신체 언어를 사용하게 되는데, 하나의 예로 손말(手話)을 들 수 있다.
이번에 첫 시집을 내는 양시연의 시는 이러한 손말의 양상을 다양하게 보여준다는 점에 특정 지을 수 있다.
시의 언어는 필연적인 것같이 보이는 것이어야 한다”는 ‘W.B.예이츠’의 말처럼 양시연의 언어는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상황을 되 비추거나 토설함으로써, 심리적으로 무관한 대상이 아니라 자기의 삶에 의미를 던지는 실존적 상황을 그려낸다. 손말을 통해 사고와 존재를 통합하려는 시인의 언어는 또 다른 소재인 일상 (제주의 자연과 풍물, 종교와 가족)에 대한 시편에서도 동일한 양상을 보인다.
1,
요한복음 1장 1절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 말씀(언어)은 신의 존재를 표명하는 기호이지 인간을 향한 계시로, 땅 위에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축복의 언어로 임재한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시는 항상 그 자체 속에 이상을 좇는 신과 같은 성격을 갖고 있다” 고 말한, ‘C.P. 보들레르’의 말처럼 이러한 신성성은 문학에 있어서 구원성을 지닌다.
그녀가 다녀간 날은 어김없이 비가 왔다
여태껏 한마디 말도 세상에 못 내뱉어본
그랬다 농아였다. 선천성 농아였다.
여성 상담하는 내게 무얼 자꾸 말하려는데
도저히 그 말 그 몸짓 알아듣질 못했다
나는 그날부터 수어(手語)공부 다녔다
기어코 그녀의 말, 그 손말을 알아냈다
그렇게 하늘의 언어 아름답게 말하다니!
- <손말>전문
시인은 공직자로 근무할 당시, 여성 업무를 담당하다가 청각장애인을 만나게 되었고 수어 통역사 자격증을 획득하여, 필요할 때마다 통역 자원봉사를 했다고 한다.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 손말을 갈고 닦은 시인이 마침내 시인의 길에 들어선 것은 하늘이 내려준 숙명이 아닐 수 없다. 해결되지 못한 상처를 꺼내 치유로 승화시키는 손말은 시인에 의해 “하늘의 언어”로 규명된다. 손말이 태동한 근본이 하늘에 있음을 소명(疏明)한다.
이때, 손말은 시인에 의해, 하늘이 내려준 신성한 말로서의 자격을 획득한다. 이 시 하나가 시집의 특징을 보여주는 노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촉수어, 촉수어란 그 말 처음 듣는 순간
인터넷 검색 창을 두들겨도 소용없고
퇴근길 발길들마저 고기떼로 보이네
손으로 보고 듣고, 손으로 말을 하는
막냇동생 그 또래 손말하는 농맹인 현 씨
삼십 년 농인이었는데 이제는 눈조차 멀어
그래, 이쯤은 돼야 사랑이라 할 수 있겠네
눈멀기 전 눈 맞췄던 그 이름 뱉지 못해
가슴속 사라진 사랑 가슴에 붙여사네
누군들 이름 하나 숨겨놓지 않았을까
마침내 내 손바닥에 그려내는 첫사랑
오늘은 찬찬히 꺼내 촉수어로 고백하네
-<촉수어 고백>전문
‘촉수어’는 상대방이 구사하는 수어를 전혀 보지 못하는 ‘전맹’인 시청각장애인이 상대방의 수어에 손을 접촉하여 촉각을 통해 대화를 나누는 의사소통 방법이다. 시인은 이를 “손으로 보고 듣고, 손으로 말을 하는” 것이라 표현한다. 촉수어는 상대의 손을 얹고 소통을 하기 때문에 얹혀진 손의 무게만큼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고 한다. 그 느낌을 물고기들이 물결을 헤엄칠 때 느끼는 물결의 촉감으로 인식한 시인은 “퇴근길 발길들마저 고기떼로 보”는 심미적 인식을 드러낸다. 시인의 혜안이 예사롭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삼십 년 농인이었는데 이제는 눈조차” 먼 그 사람이 첫사랑이었다니! “그래, 이쯤은 돼야 사랑이라 할 수 있겠네” 라고 고백하는 시인의 말은 첫사랑의 본질을 꿰뚫는 감성을 보여준다.
존재의 본질을 탐색하는 시인의 감각은 다양한 모습으로 그 비의(比擬)를 드러낸다. 손말의 서정이 만들어낸 감각의 현장을 보자.
아장아장 손지오름/옹알옹알 솜양지꽃//눈 녹은 그 자리에/갓난쟁이 다녀갔나//손말로/ 못다 한 고백/빛깔로나 하나보다 -<손지오름 양지꽃>전문
이 시는 ’갓난쟁이’의 이미지를 통해 손말을 처음 쓰는 자의 어눌함, 어색함 등을 고백한 시이다. 짧고 간결한 시이지만, 손의 지체, 즉 손가락을 연상케 하는 ‘손지오름’과 ‘ 여리게 피어나는 들꽃인 ’솜양지꽃‘을 통해 시각적 감각과 더불어 언어젹 유희가 리듬을 일으킨다.
그래 저 떼쟁이 예닐곱 살 떼쟁이야/선천성 농아지만 그래도 소리는 남아/어마아, 어마 어마아 그때 그 소리는 남아//그때 그 소리만 붉디붉은 꽃으로 피어/꽃을 떠받치는 저 조막만 한 하얀 손/나에게 손말을 거네. 어마아 어마어마 - <따라비 물봉선> 부분
‘엄마’라는 말은 아가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 말문을 열었을 때 부르는 소리다. 선천성 농아들의 구음을 시인은 “어마아 어마어마”라고 듣는다, 그 소리는 손말의 원형이 모태에서 비롯된 발음이라는 걸 알게 해준다. 손말이 ‘하늘의 언어’ 임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표현이라 하겠다.
빠앙빵 경적 울려 봐라, 위협 운전해 봐라/세상 온갖 잡소리 아무리 떠들어봐라/차 안은 소리가 없네, 거룩한 손말 세상- 중략-그렇다면,/층간소음 저들은 어찌 알까/소리 때문 죽이고 소리 덕에 살아나고/아무리 그래 들 봐라, 그 세상엔 소리가 없다 -<아무리 그래 봐라> 부분
손말의 세상에서, 입에서 파생되는 건 소리가 아니다. 따라서, 소리를 듣는 귀의 역할도 필요 없다. 입과 귀가 필요 없는 고요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빛이 없으면 손말을 읽을 수 없다. 손말이 ‘하늘이 언어’라는 건, 소리는 없고 빛만 있는 세상에 있기 때문이다. 그 이미지는 구원자가 세상에 나타날 때 보이는 현상과 비슷하다. 불필요한 잡음이 들리지 않는 세상, 사랑한다는 묵언 외에 말이 필요 없는 거룩한 세상을 시인은 보여준다.
자정이 넘었는데 전등을 끄지 않네/오랜만에 두런두런 무수히 오가는 손짓/그렇다. 빛이 없으면 안 보이는 저들의 말//그래 끄지 마라 밤새도록 끄지 마라/나도 어둠 속에 끝내 놓친 말이 있다-<사랑해> 후반부
인간은 자신의 언어에 갇혀 홀로 남는다. 그리고 현실은 언어 없이 남겨지게 되는데, 왜냐하면 뱉어내는 말들은 이제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순수한 소리이기 때문이다. 손말의 세상처럼,
2,
시 창작에 있어 반드시 요구되는 또한, 없어서도 안 되는 요소가 이미지다. 이미지에 관해서 ‘옥타비아 파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미지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과 우리 자신에 대한 무시무시한 경험을 표현하려고 할 때마다, 우리에게 밀어닥치는 침묵에 맞서기 위한 절망스러운 수단이다” 이 말은 이미지를 창출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시사해준다. 그 절망스러운 수단을 극복하는 것은 무엇일까,
양시연은 즉물적(卽物的)인 직관을 통해 그 이미지를 실현한다. 추상적이거나 개념적인 삶의 발화가 아니라 즉물적인 사물, 혹은 현상에 개입하여 근원적 동시성에 충실한 자신만의 관점을 보여준다. 시각, 혹은 청각적 이미지가 도드라지는 것은 입과 귀의 열림에 집중해야 하는 수화 통역사인 삶과 밀접한 관련성을 보인다.
몇 년째 벼르고 별러 트랙터를 사던 날/용수리는 잔칫집 박수갈채 쏟아졌다/괜스레 동네 한 바퀴 휘휘 돌던 아버지-중략-이랑 따라 늙는 것은 세월만이 아니다/골다공증 어머니 숭숭숭 언덕바지/방사탑 까마귀 하나 반추하는 저녁 노을 -< 트렉터> 부문
용수포구 그 한켠 노부부 성게를 까네 /한세상 저 빈자리에 슬쩍 끼는 차귀도// 손가락 마디마디 성가신 성게 가시/ 하루 수당 받아들면 가시야 빼든 말든/다 저녁 등 뒤로 와서 안부 묻는 저 노을-<성게 까기>후반부
시인의 고향인 용수리는 노을이 아름다운 마을이다. 노을이 아름답다는 해거름 마을 중 하나이다. 어릴 적부터 수없이 보아왔던 노을처럼 위에 열거한 두 편의 시에서도 두드러진 이미지는 노을이다.
늙으신 아버지가 몰고 다니시던 빨간 트랙터, 포구에 앉아 성게 까는 두 부부의 모습도. 아름다운 노을일 수밖에 없다. 손말을 눈으로 읽는 것처럼 시인이 보여주는 노을 이미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서글픈 시각적 이미지다.
칠순을 지나면서 시누 손이 뒤틀린다/돌가시낭 마디처럼 마디마디 돋는 오름/오름아/슬픈 오름아/류마티스 관절염아-<손가락에 오름 앉다>후반부
오름은 제주 전역에 분포하는 단성화산을 일컫는다. 오름'이라는 낱말 그 자체는‘ 산봉우리를 뜻하는 말로 제주에만 남아 있는 순우리말이다. 무려 360개에 이르는 크고 작은 오름에 얽힌 이야기도 많지만, 설문대 할망이 흙을 나르다 생겼다는 제주도 탄생 설화 외에 ' 중국의 승려 고종달이 제주도의 상서로운 지기를 끓기 위해 혈 자리 여기저기에 쇠말뚝을 박아넣었다. 그때 솟구친 피가 굳어져 오름이 되었다'는 설화가 그중 유명하다. 위 시에서 시인은 관절염 때문에 솟은 손가락 마디를 돌가시나무에 찔린 오름으로 형상화한다. 개인사적인 내용이지만, 오름을 스쳐 간 역사의 흔적이 언뜻 보이는 듯 하다.
팽팽하던 바다에 썰물 기운 감돌면/구순 어머니는 무엇에 홀렸는지/뒤꼍에 감춰둔 테왁 둘러메고 또 나간다.-중략- 모처럼 찾아온 친정, 숨비소리 듣는다-하략-.-<친정 저녁상> 부문
어머니의 테왁도 저렇게 둥실댔겠지/한평생 둥실둥실 이어도 이어도 사나/저녁상 물린 자리에 혼자 앉은 숨비소리-<이어도 피에타> 후반부
‘숨비’는 제주말로 잠수를 뜻한다. '숨비소리'는 공기통 없이 바다에 들어가 깊은 바닷속에서 해산물을 캐는 해녀들이 숨이 턱까지 차오르면 물 밖으로 나오면서 내뿜는 휘파람 소리이다. 날숨 이상의 의미를 가진 숨비소리는 삶의 단말마 같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다. 절대 절명의 순간을 이겨내는 생명의 끈인 것이다. 시를 읽다 보면, 호오이~ 호오이! 숨을 내쉬는 어머니의 숨결이 귀에 들리는 듯 하다.
비 살짝 오시는 날,/그 ‘살짝’에 살짝 나와/날 잡아봐라 날 잡아봐라/ 이리 미쭉 저리 미쭉/한 평 반 텃밭에 앉아 숨바꼭질하고 있다/빚내서 지은 집은/시누이보다 맵다며/내 땅 내 집 없어도 상팔자 아니어도/어머니 희고 긴 길이 눈물처럼 반짝인다 -<민달팽이>전문
민달팽이처럼 살아온 어머니의 “희고 긴 길”을 따라 시심을 길어 올리는 데 작용한 시적 순간이 시인에게는 아픔으로 작용할지 기쁨이 될지, 그 배경에 청각을 벼린 언어가 시인이 낳고 자란 제주의 물결 소리가 작용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명품화된 청각으로 시인이 보내주는 싸락눈 소리를 들어 본다.
커피 한 잔 가능?/카톡 카톡 싸락눈 소리//터치를 실수 한 건가?/카톡 카톡 싸락눈 소리//은밀한 그 목소리로/ 카톡 카톡 싸락눈 소리 - <그 사람>전문
3,
“시가 단순히 삶의 시간을 따라가기만 한다면 시는 삶만 못한 것이다. 시는 오로지 삶을 정지시키고 기쁨과 아픔의 변증법을 즉석에서 삶으로써만 삶 이상의 것이 될 수 있다.” 한 ‘G.바슐라르’의말처럼 시인은 가장 산만하고 가장 이완된 존재를 통일하여 그 본질에 시선을 투척함으로써, 삶 이상의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들에 포커스를 맞춘다.
한라산 돌매화는 어디서 날아왔나/세상에서 가장 작은 통꽃을 피워놓고/오뉴월 백록담에나 제 얼굴을 드러낸다//빙빙 돌던 미리내도 걸린다는 한라산/그 사연 하나하나 엮어내는 은초록 암매//이 땅에 잠시 왔다고 온 몸으로 고백한다.-<돌매화> 전문
멸종위기 야생식물 1급으로 지정되어 있는 ‘돌매화’는 한라산 정상에서 살아가는 식물이다. “이 땅에 잠시 왔다고 온몸으로 고백” 하는 돌매화 속에서 존재의 본질을 천착하는 사유를 본다.
산봉 오름 한 자락 베고 눕던 그 날들//얼핏 내린 비에 내려놓은 치자꽃처럼/사십 년 내 일자리 순순히 내려놓고/ 이제 또 이순의 능선 어리로 끌고 갈까-<치자꽃 능선>부분
물매화, 쑥부쟁이, 꽃향유, 자주쓴풀/어느 꽃 하나라도 그대에게 바치면/무쇠솥 그 첫사랑이 또 한 번 깨어날까 -<늦은 사랑> 부분
4월이면 죽고 살고/그게 뭐 대수인가 열매도 이파리도 다 바쳤던 감귤나무/어느새 성당 공터에 감귤꽃 다시 오는 걸-<아득한 사람>부분
삼나무 꽃가루가 이 섬에 자욱하면/염불도 처방전도 소용없다/이 놈아 /너 죽고 나 살자하며/ 밀당하는 춘삼월-<신경성 안될 병>부분
꽃놀이/한 번 못 가고/ 올봄이 가버렸네//그래도 /가는 봄은 그냥 가진 못해서//새 가지/세 가지마다/황금꽃 걸어뒀네-<삼지닥나무꽃>전문
제주의 들과 산에서 피는 미미한 존재들에게 삶 이상의 삶을 부여하는 양시연의 시는 이제 의혹을 거부한다. 소개말과 원칙과 방법론과 증거 따위를 거부하면서, 고향 바닷가에 세워진 도댓불처럼 삶의 이면을 비추려 한다.
4,
도댓불은 제주지역의 민간 등대이다. 전기가 없던 시절, 야간에 배들이 무사히 귀항할 수 있도록 어촌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것이다. 1970년대에 전기가 보급되면서 현대식 등대로 대체되어 사용하지 않게 되었으며, 이후 항만시설을 확충하고 해안도로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많이 사라지고 훼손되었다. 개중에 원형 그대로가 아니며 철거되었다가 복원된 것도 있으며, 그 터만 남아 있는 것도 있다.
내일 비가 오려는지 노을이 참 곱다
이런 날 포구는 참았던 말 문 트이고
견디지 못한 그리움 심장마저 붉어진다
처음 나가는 배가 켜고 끝에 오는 배가 끈다는
자구내포구 저 도댓불,
왜 꺼져 있는 걸까
어쩌면 오래전부터 고기잡이 안 나갔나 봐
파도도 기웃대다 스을쩍 그냥 가고
기다리다,
기다리다 못한 갯메꽃
노을빛 따라 올라가 제 몸 살라 불 켠다
돌아오지 못한 영혼 있기는 있는 걸까
도댓꽃 보려나
위리안치 내 사랑
이 가을 끝물쯤에는 저 불마저 끄고 싶다
-<도댓불>전문
위의 시는 제주에서도 수평선으로 지는 노을과 일몰이 아름다운 곳, 자구내포구에 있는 도댓불을 그려낸 시이다. 시인은 더 이성 켜지지 않는 도댓불을 통해 시간의 뒤안길로 사라진 제주의 역사와 역사가 품은 풍정을 그리워한다. “견디지 못한 그리움 심장마저 붉어진” 그 끝에는 고향 제주를 사랑하는 마음이 담뿍 들어 있다. 위리안치된 그 사랑을 말로 설명하지 않고 “자구내포구 저 도댓불,”처럼 노을과 파도와 갯메꽃과 관계하는 자아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천명하는 즉물적 이미지를 완성 시킨 것이다.
추적추적 빗소리 약속한 듯 찾아간다
북촌포구 끝자락 북촌마을 도댓불
한 세기 훌쩍 지나도 기다림은 끝이 없다
누가 깜빡 잊었을까, 불 안 켜고 출항했네
바다에겐 백 년도
잠시 잠깐이라는 듯
그리움 어디 있길래 저리 곧추섰을까
주먹만 한 살 점 내주고 입 다문 표지석
4·3 포화 소리에 귀 닫은 다려도
지긋이 실눈 뜨고서 그날 얘기 들려준다
파도에 부서지고 물벽에 멍들어도
나에게도 ‘도대’같은 그런 사랑 있었으면
백 년을 기다려 주는 그런 사랑 하고 싶다.
-< 도댓불 2> 전문
서정시에서 자아와 세계는 상호 융합하고 침투한다. 구성요소 간의 밀접도가 선명해지고 독자와의 소통도 원활해진다. 양시연의 이번 시집은 이러한 정조(情操)속에서 쓰여진‘손말’에 대한 보고서이자 감각(感覺)의 촉수로 일상과 소통해온 시인의 첫 고백이라 하겠다. 시인의 첫 고백이 독자의 영혼 속에 어떤 계속성으로 남게 될지 오르지만 “파도에 부서지고 물벽에 멍들어도/나에게도 ‘도대’같은 그런 사랑 있었으면/백 년을 기다려 주는 그런 사랑 하고 싶다”는 시인의 바램이 도댓불처럼, 오래 남는 유적처럼, 시의 현장을 지키는 불빛으로 더욱 뻗어 나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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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시연 / 제주 한경면 용수리 출생,제주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졸업, 2019년 문학청춘(시조)으로 등단, 정드리 문학과 ‘바람집’ 동인, 오늘의 시조 시인회 회원, 제주특별자치도 보건복지여성국장 역임, 현 제주특별자치도 사회서비스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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