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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의 새

낙엽 사용증명서(使用證明書)

by 너머의 새 2025. 3. 3.

 

낙엽 사용증명서(使用證明書)/강영은

한 장의 낙엽을 주워들 때

낙엽의 허무와 빛깔을 찬양할 때

아름답게 물든 계절이

시들어간다

낙엽을 주워들 때의 감정과 감각이

불행이란

단어를 달고 사는 건 아니다

헤어지자는 너의 기별을

낙엽의 명예로 잘못 읽은 일

어느 여름날, 너에게 물들어간

나의 불행은

푸른 잎사귀를 고집하는

가지의 상상에서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겨울 숲에서 들어보아라

빈 가지를 흔드는 바람 소리를!

그 떨림이 우리를 흔드는 건 아니다

수식을 좋아하는

숲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무는 나무로서 바람은 바람으로서

낙엽의 운명에 공감할 뿐

우리의 부재를 말하지 않는다

한 장의 낙엽이 언제나

불행에 집중하는 건 아니다

한 장을 넘기면

또 다른 장면이 시작되는 것을

책갈피로 꽂아둔 낙엽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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