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 내려다본 포도호텔 전경
둥근 저녁/강영은
크고 작은 오름*을 배경으로 앉힌 바람과 햇빛의 시간 속에서
쑥부쟁이와 서양민들레와 산수국이물음표로 구부러지는 저녁
기우는 햇빛이 돌담을 타고 기어들면
하루의 들숨과 날숨이 드나들던 포도호텔*의 차양 막,
그 펄럭임이
황토 빛 숨결에 잦아들어 나는 낮달처럼 목숨이 잠잠해진다
한 걸음 더 서쪽으로 내딛어 하루만치의 생을 내려놓는 메밀꽃
머리칼을 쓸어 내리는 풀들과 나뭇잎들
이쯤에서 노을이 진다고, 밀물처럼 저녁이 온다고,
수위를 낮추는 목숨 앞에서 사립문을 여는
어둠은 늘 그렇듯 발자국 소리 조차 없다
산아래 사람의 마을에서
반딧불 같은 불빛들 채 켜지기도 전에
바람이 풀어놓은 길을 따라 바람에 밀리기도 하면서
동쪽으로 날아가는 무수한 잠자리 떼를 보던 나에게도
반짝 등이 켜진 건
목숨의 둥근 고리를 연결하듯 쉬지않고 저녁을 이동하는
날개의 풍력 때문일까
물빛 날개에 실린 저녁이
새벽을 지나 다시 돌아오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둥근 달에 이마를 기대어 천천히 잠을 내려놓는
포도 호텔*의 밤
산 그림자가 이불 속처럼 아늑하다
*포도 호텔: 한라산 중턱의 리조트 호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