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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비단구렁이

건빵의 휴가

by 너머의 새 2015. 9. 7.

 


건빵의 휴가/강영은



마지막 휴가를 나온 아들이 건빵 두 봉지를
선물로 내민다
언제 나올지 몰라 애태우며 기다렸다는 건빵
그래서 더 맛있었다는건빵, 軍의 특식인 그것을 받아드니
말랑말랑한 밀가루가 단단한 몸을 가질 때까지
얼마나 달구어졌을까 코끝이 찡했던 것인데
어디로 튈지 몰라 부글부글 끓던 젊음이
거대한 혼합기 속에서 잘 치대고 주물러져
각진 부동 자세로 빳빳하게 굳어져
네모난 한 때를 지나 온 것일까
막사에서 참호에서 군기 든 딱딱한 이 맛
모래처럼 씹히는 바삭한 이 맛
사막의 전장이나 북녘 땅 어느 병사의 초소에서도 밥이 되고 있을
이 간편한 맛에
지상은 여전히총부리를 겨누는 비상식량의 시대
뜨거운 배로焙爐 속에서 구워질 대로 구워진 목숨의 한 끝이
부서질 것만 같은데

이 땅의 아들들은 누구라도 한 때 건빵이 되고
이 땅의 남자들은 너나없이 건빵을 추억하고
이 땅의 여자들은 킥킥대며 건빵을 기다리고
이 땅의 부모들은 건빵을 맛보고
건빵처럼 부서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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