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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비단구렁이

아버지 별

by 너머의 새 2015. 9. 7.

 



아버지 별 /강영은



나에겐 아버지가 참 많다
넘어지거나 다급할 때 아이고, 아버지를 부르면
내 핏줄에 핏 톨 하나씩은 남겨주셨을
아버지의 아버지들이 달려와 나를 일으킨다
중얼거리는 주기도문 속의 아버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창세기의 어둠을 걷으셨던,
모든 아버지의 아버지인 그 아버지도
내게 계시다
길을 가다가 만나는 중절모의 노인들은 다, 내 아버지로
보인다 아니 내 아버지시다
이렇게 많은 아버지를 가졌지만 내 몸의 핏줄들은
아버지께로 닿지 못한다
한 남자의 몸속에 집 한 채 들여놓던 오래전 그 때,
낡아서 덜컹거리는 아버지를 떠나왔기 때문이다
수로가 막힌 은하수처럼 눈과 귀와 입을 다물고
집짓기에 골몰해 있는 동안
낡고 쓸쓸한 집이었던 아버지는 지상에서
하늘로 이주하셨다

내 눈 속으로 물꼬가 트이는 밤, 하늘을 본다
나를 쳐다보는 저 별은 어느 아버지일까?
대답이나 하듯 더욱 눈을 크게 뜨는 별빛을 보면
모두가 그렁그렁한 아버지의 눈빛이다

지상에 집 한 채 남기지 않으셨던 아버지는
내게 하늘을 남겨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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