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건널목을 건너며/ 강영은
- 김송하 시집"건널목에서"를 읽고
시를 쓴다는 것은 시인의 눈에 비친 우주나 사물이나 내면의 세계를 시라고 하는 언어형식으로 표현하는 미적행위다 그 미적 행위의 긍긍적인 의미는 자기와 세계의 구원에 있으며 문학적 구원의 방식이라는 데서 종교와 구별된다. 김송하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을 접하면서 시인의 이번 시작업은 자신을 구원하는 성과물로 여겨진다. 시집 면면히 드러나는 시편들이 보편적 세계를 시적 대상으로 삼았기 보다 개인적 주관적 대상물을 통하여 자신의 내면세계를 형상화하고 그 속에서 위안을 강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때문에 개인적, 주관적인 대상이 빚어내는 풍경들은 아버지 어머니, 아내 아들인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의 인물들을 모티프 삼아 체험과 상상을 통한 진정성이 여실히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그 진정성의 시편들은 병든 아내와 연로하신 부모님을 돌보면서 써내려간 사랑과 아픔의 소산물이기도 한 것이어서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첫번째 시집인 "아내가 읽어주는 시편" 의 연장선에 있다고 보여지지만 힌층 더 성숙된 기량과 깊이있는 사유를 통하여 완성도면에서 시의 행보가 훨씬 시원스러워졌음을 느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첫번째 시집에 드러났던 '향토적 전통 정서'가 맛깔스럽게 익어 시인의 해학과 풍자가 물 흐르듯 유장한 리듬을 갖고 시집 전편에 감돌아 흐르다. 충정도 방언이 곰살맞게 시어의 자리로 격상되면서 백석의 시편 속에서 읽었던 우리말의 구수한 향기가 물씬 풍겨나는 것이다.
들구
착하다,착하다, 그러지들 말어
등신 되어
들구
잘한다, 잘한다, 그러지들 말어
등신 되어
누구는 등신을
神과 등급이 같은 거라고 하지만
고만 떨다밀어
낭떠러지여
*등구:자꾸(충청도 방언)
-그러지들 말어 전문
한참을 웃고 난 다음에 뒤골이 땡기는 듯 가슴이 서늘해지는 시편이다. 간결하면서도 화장기 하나 없는 시편은 읽기에도 편하지만 맨 얼굴을 드려다보듯 싱그러움이 가득하다. 이처럼 시집 속에 들어 있는자유자재, 종횡무진의 역설과 풍자들은 충청도의 느린 말투와 더불어 묘한 조화를 느끼게 한다. 특유의 질박한 말투로 부조리한 사회를 비웃기도 하고 가슴아픈 사건의 현장을 풍자하며 양반처럼 질타하기도 한다. 그 시편 속에 들어 있는 전통적 가락과 어조들은 그만의 전유물로 한층 시인의 개성을 돋보이게 한다.
잡년
갯고랑 들쑤시고 시도 때도 없이 나 대더니
하얀 속살 비집고
빨갛게 웃고 자빠졌네
오라질년
백설은 분분한데
오두방정
방실방실 지랄났네
우뭉한년
기왕 피울거면 후딱 피워버리던가
필동말동
남의 속은 왜 뒤집어
남해 설 동백
그년
사람잡네
-雪 동백 전문
그는 욕심을 버린 시인이다. 유명해지거나 좋은시를 쓰겠다고 무리수를 두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시어들은 시어라는 전형의 틀을 벗어버리고 활달하게 살아 움직인다. 마음 속에 용해되어 있는 정서가 적당한 외부자극을 받았을 때 시의 변비를 앓지 않고 배설해버리는 시작업이 얼마나 상쾌한지 시인들은 알 것이다. 시를 다듬거나 만들려는 억지 노력이 아닌 몸으로 쓰는 시, 그의 시작업은 그렇기 때문에 유쾌 상쾌 통쾌의 쾌변 가락을 지닌다. 서정시의 본질과 전통에 입각한 율격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서사시가 객관 적인 이야기의 것임에 비하여 서정시는 주관 적이고 개인적이며 정서가 중심이 되고 시의 음악성, 즉 리듬이 중요시 되며, 서사시가 과거의 서술함에 비하여 현재적인 표현을 한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볼 때 그의 시편들의 갖는 서정성은 내용과 형태를 초월 하여 감정의 파동에 응하는 리듬 내지 운율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그의 시어들이 스스로 적적히 어울리면서 음악효과 이상의 정서적 감흥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노래의 전통이 시적가락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리라. 몽상하는 사람이 말할 때는 누가 말하는 것인가, 그인가, 세계인가, 구분할 수 없는 경지가 바로 미적 체험이요 세계의 융합이라고 바슐라르가 말했듯이 그의 시편들은 자아와 세계의 만남이 동일성으로 이루어질 때 생기는 미적체험이라 할 것이다.
신께서
말씀을
목련의 배를 빌려
배게 하더니
간 밤
어둠 속에서
몸을 풀었네
하얀 덧니처럼
뽀얗게
-목련꽃 피는 아침 전문
목련 속에서 신의 말씀을 듣는 시인의 미적 체험은 하얀 덧니처럼 매력적임에 틀림이 없다.시인이 생각해낸 덧니는 첫사랑 소녀의 덧니 같이 뽀얗고 어여쁜 덧니일 것이다. 이처럼 서정시는 개인적이고 독창적인 심정을 노래한다. 자아의 내적인 세계와 외적인 세계가 철저히 결합하거나 충돌하는 관계가 서정시의 특징이라면 시인의 시편들은 대체적으로 내면적인 의지와 외부적인 세계와의 긴장이나 충돌을 통하여 새로운 세계를 조망하려는 아름다운 노력으로 꽉 차 있다. 외부세계의 충격에 대한 유기체의 반응을 인간의 존재 양식이라 할 때 시인의 경우 단순한 수동적이 아니라 외부 세계를 자기가 갖고 싶어하는 세계로 변용시켜 자아와 세계가 동일성을 이루도록 하는 능동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다음 시를 읽어보자
정상이 가까워질 수록
산의 가파름이 점점 더 완강해진다
낯선 여인네
손을 내민다
스스럼 없이 손을 내어 가파른 바위길을 끌어 올려준다
손안 의 온기 촉촉하다
사람人자다
기울기만큼 서로에게로의
기댐도 커진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각자의 산을 오른다
어려울 때
젓가락 두개를 더 놓으면
사람仁자가 된다.
-부처님 오신날 전문
사람과 어진 사람과의 사이를 이어주는 것은 젓가락 두 개다. 그 젓가락 두개야말로 사람을 어진 사람으로 이끌고 싶은 시인이의 세계이리라. 사람 人자에 젓가락을 놓아 부처와 같은 자비심을 지닐 수 있음을 깨우쳐주는 이 깔끔한 시에 경의를 표해본다. 나머지 시편들 속에서 우러나는 동심과 같이 깨끗하고 맑은 시심들은 시인의 성찬이 내놓은 디저트이다. 시인 본연의 무욕으로 편안한 행보를 하는 시인이 더욱 건필하길 기원하며 맛있는 시 한편을 디저트로 맛보면서 이 글을 맺기로 한다
사람 묵어 광 솔이 되면
반 귀신이 된다고 했나
지난 밤 꿈에
생뚱맞게 아버지하고 고향동네 영인산으로 나무를 하러 갔다
땡땡 언 나무등걸을 도끼로 냅다 후려치면
김장밭 무 뽑히듯툭툭 부러져 나가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하던지
고자배기를 마차로 가득 실어 집으로 오기도 하고
미국에 사는 아들놈하고
캘리포니아 태평양 바다에 발을 담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오질 않았겠어
그러나저러나
옥황상제께 배알하러 가는 날
예고편 보는 것 같아서 영
-사람이 늙으면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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