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 /강영은
-신미균 시집 “웃는 나무”(서정 시학)를 읽고
1,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신미균 시인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치환해내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시인이다. 그 능력의 근저에는 창호지 문에 붙어 있는 작은 유리창 같은 그녀의 시안이 바탕을 이룬다. 시집 "웃는 나무" 뒤편에 수록되어 있는 그녀의 산문 "풍선껌"에서 말했듯이 그녀가 최초로 눈 뜬 그 공간은 선과 악이 공존하는 영역을 분리시키는 맑은 동심의 세계다. 시인은 그처럼 유리창 안의 아늑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지극히 평온한 세계에서 유리창 같은 마음의 렌즈를 통해 그 너머의 세상을 응시 한다. 창호지 문에 나 있는 손바닥만한 유리창은 바깥의 모든 것을 감지해내는 줌 렌즈이기도 하고 바깥의 정황을 풍경화처럼 품고 있는 액자틀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그 유리창을 통해 흘러드는 피사체들을 줌업 시키거나 조리개를 조절하면서 대상과의 거리를 자유자재로 어루만지는 특유의 아우라를 이루어 낸다. 가볍고 발랄한 어법으로 시의 펀치를 날리는 그녀의 시편들은 그러므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을 여지없이 박살내는 위트와 재기를 담고 있다. 길가는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건 세차게 부는 바람의 헤게모니가 아니라 햇빛을 내려 보내는 태양의 일상적인 행위에 있음을 증명해낸다. 이처럼 일상적인 삶의 무거움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으로 치환시켜 경쾌하고 발랄하게 해소시켜주는 그녀의 시편을 보기로 하자
형광등에 검붉은 띠가 생기더니
껌벅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1분 간격으로 껌벅거리다가
30초, 15초, 1초 간격으로 껌벅거렸다
방안에 있던 내가 없어졌다 나타났다
거울과 팔이 없어졌다 나타났다 다시 없어졌다
보이던 물체들이 토막토막 끊어져서 보였다
얼굴 팔 다리 의자 책상 거울 연필 모두들
까만 배경위에 하나씩 조명을 받으며
나타났다 곧 없어졌다 그 틈에 끼어있는 내가
감전 된 듯 자꾸 어둠 속으로 빠져 나갔다
나는 로봇처럼 토막토막 끊어지는 행동으로
나를 잡으려고 어둠 속을 휘저었다
껌벅이는 조명 때문에 마치 춤추듯
내가 나를 잡으려 하는데,
나와 거울과 의자와 책상이 완전히 지워졌다
-없어진 사람- 전문
명멸하는 빛과 어둠 사이, 그림자가 있다. 이 시편에서 그림자는 완성된 존재의 형상으로 나타나지 않고 로봇처럼 토막 나는 존재로 나타난다. 또 다른 자아인 그림자가 지속적인 껌벅거림을 통하여 온전한 하나의 영상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나와 내 의식과의 괴리감, 혹은 일상과 단절된 내면적 자아의 불안감을 말하는 것인지 모른다. 존재를 비쳐주는 빛은 이 시에서 껌벅거리는 형광등으로 제시되어지며 이 시속에서는 토막 난 그림자를 생산한다. 빛이 지나가는 경로 위에 물체가 있을 때, 물체 뒤쪽으로 빛이 통과하지 못해 생기는 어두운 부분을 그림자라고 하는데. 존재의 근원을 비쳐주는 빛이 온전하지 못할 때 드러나는 형상 역시 온전치 못하다. 이러한 관계성에서 삶의 본질과 현상의 불일치는 어둠을 품고 사라질 수밖에 없는 당연 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잠깐 체코 작가 밀란 쿤데라가 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드려다 보기로 하자.
1968년 `프라하의 봄`을 배경으로 쓰려진 이 소설은 의사 토마스와 테레사, 사비나, 프란츠 등 주요 작중인물의 사랑과 성을 극히 개인적 측면에서 다루면서, 역사 속에 던져진 인간 존재의 의미와 삶의 무상함을 되새긴 작품이다. 니체의 `영원회귀`사상에 따라 어떤 잔인함이나 아름다움도 세월이 가면 그림자로 남는다는 것을 확인하면서도, 이 `존재의 가벼움`과 반복 없는 삶에 대해 항의 적 태도를 나타내기도 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소설 속에서 보여지는 변함 없는 성실성과 배반, 현실과 꿈,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찢겨진 존재들의 복합성은 이 시편 속에서 토막 난 그림자로 존재하는 듯 여겨진다 , 어둠 속에서 토막 난 그림자를 붙잡으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급기야 지워지고 마는 존재는 완만한 상호간의 파괴를 통해 어떤 내면의 평화를 다시 찾는 길이기도 하다. 결코 단순하지 않은 주제임에도 시인은 선명한 행위의 묘사를 통해 고장 난 형광등 속에서 유추해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상기시켜준다. 무겁기는커녕 유머스러운 일면마저 느끼게 한다. 시인 자신이 갖고 있는 천진스러움에서 풍겨 나오는 특유의 개성 탓이겠지만 풍선껌처럼 부푸는 미소를 지닌 시인의 내면적 소산물임에 틀림없을 것 같다. 시인의 내력이 그를 증명 해주는 듯하다
2, 웃는 나무의 해학
신미균 시인은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 교육대학교를 나왔다. 1996년 "현대시"를 통해 등단한 이래 시집 " 맨홀과 토마토"를 상재했으며 교사로서 초등학교에 근무한 경력과 퇴직이후에도 수년간 학생들을 가르쳐왔다. 언제나 학생들과 더불어 살아왔던 그이기에 동심을 잃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지천명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화장기 없는 얼굴에서 풍겨 나오는 미소는 아이와도 같이 천진스럽고 맑다. 순수하고 꾸밈없는 성격과 외모를 볼 때 아이와 같은 시인의 본성은 타고난 것임에 틀림이 없다. 시인의 시 역시 외모만큼이나 가식이 없다. 요란한 수식어나 꾸밈이 없이 담백하면서도 웃음과 재치가 넘친다, 사이다처럼 톡 쏘는 청량감과 간결한 표현, 그리고 선명한 이미지의 구축은 동심 속에 숨어 있는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한 워즈워드의 전언이 들려오는 듯 하다. 동심, 즉 아이와 같은 마음이 시인이 평생 지녀야할 기본심이라고 한다면 아무런 가식 없이 어린아이의 시선과 웃음으로 생의 무거움을 바라보는 시인은 축복받은 것임에 틀림이 없다. 시인의 시집 제목이기도 한 “웃는 나무”를 감상해보자
나무가 웃고 있다
자지러지게 웃고 있다
뒤로 넘어가면서 웃고 있다
웃다가 웃다가 허리가 끊어지려고 한다
저러다 죽는 것이 아닐까
자세히 보니
새 한 마리
나무에 간지럼을 태우고 있다
나무가 웃는다
바스러지게 웃는다
바삭바삭 부서진 유리조각처럼
빛을 반사하면서 웃는다
고개를 숙이고 웃는다
듬성듬성 웃는다
자세히 보니
새가 떠나갔는데도
웃고 있다
-웃는 나무- 전문
나는 이 시편에서 누구를 만나든, 처음이든, 자주 보든, 일각의 여세도 없이 부풀어 오르는 시인의 웃음을 본다. 한 점의 가식도 보탬이 없이 입속의 앵두 한 알이 저절로 터지듯이 터져 나오는 웃음은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잎사귀를 흔들 듯 흔들어 놓는다. 어느 책에선가, 웃음이란 기대했던 상황이 다르게 펼쳐질 때 나오는 놀람의 소리, 고정 관념이 깨어질 때 나오는 소리, 상대방이 웃길 때 나오는 소리, 경보해제를 뜻 하는 만국의 가장 아름다운 언어라는 것을 읽은 적이 있다. 그러나 웃음이 웃음 자체에서 발행하여 웃음 자체로 만 끝나는 적은 없다. 시인은 3연에서 웃음의 미학 너머에는 진한 눈물이 배어있음을 이야기 한다. 바스러지게 웃는 나무, 고새 숙이고 듬성듬성 웃는 나무는 웃음이 눈물과 한 뿌리라는 걸, 눈치 채게 한다. 새가 간지러움 태울 때 허리가 끓어질 듯 웃는 나무의 웃음 속에는 유리조각과 같은 아픔이 배어 있는 것이다. 시인의 혜안은 동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동심을 심화 확대하여 순수 깊이의 아픔을 읽어내는 것이다.
3, 비장의 무기
원로 문학평론가인 이 영수 교수(청주대 명예교수)는 우리 문학이 무거운 역사적 현실에 묻혀 지나치게 근엄하게 다뤄졌음을 지적하고 한국문학에서 웃음의 미학을 되짚었다. 해학, 골계미등은 우리 전통문화에도 배어있는 특징 가운데 하나인데, 웃음을 절망의 희화적 수법으로 썼다는 데서 우리 문학의 독특함을 찾았다. 그가 21세기의 문학은 재치와 유머, 기지가 번뜩이고, 농담처럼 진실을 이야기하는 작가가 이끌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것에 비추어 볼 때 시인은 이미 앞날을 전망하는 시편들을 상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문학 속에 나타나는 미의식 중의 하나인 골계미는 시인의 시편 전체에 골고루 보여지는 하나의 특징이라 할 것이다 다음의 시편 역시 골계미가 잘 드러나는 작품이라 하겠다.
유리컵 속으로 한 사람이 들어 왔다
그는 눈이 작고 못생긴 데다
내가 평소에 싫어하던 사람이었다
그 사람 뒤로 창문과 전화기까지 따라왔다
그는 가벼웠다
나는 컵을 한손으로 들고 빙빙 돌렸다
그 사람 얼굴이 옆으로 늘어났다 위로 길어졌다
창문과 전화기도 옆으로 넓어졌다 길쭉해졌다
나는 컵을 아래로 들고 그 속의 것을 쏟아냈다
손바닥으로 탁탁 치며 최후의 한 바울까지
모두 밖으로 내보냈다
그래도 그 사람은 쏟아지지 않고 그대로 있다
나는 컵을 공중으로 던져 올렸다
유리컵 속의 사람과 전화기와 창문이 작아졌다
그러다 그 속의 사람이 점점
보이지 않게 되었다
손을 털며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서는데
포물선을 그리며 컵 속의 사람이
내 머리를 때렸다
떨어진 컵 속에서 깨어지지 않은 사람이
웃고 있다
-유리컵
유리컵을 통해 드러나는 상황들이 한편의 우화처럼 재미있게 전개되어진 시다. 시적 화자는 어느 커피숍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중인지 모른다. 그런데 마침 보기 싫은 사람이 들어온다. 그 사람과 눈이 마주치지 않기 위해 하는 행위가 유리컵 속에 만화경 같은 요술을 자아낸다. 마침내 공중으로 던져 올려 진 유리컵, 그것은 화자의 마음일 것이다. 외면하고 마주치지 않고 싶은 화자의 마음속에서 그 사람은 점점 사라지고 둘러리 같은 주변의 사물들과도 이별을 고한다. 그 이별은 커피숍을 나서는 것이다. 그런데 아뿔싸, 커피숍을 나서려는 순간 그 사람에게 걸리고 만다. 떨어진 컵 속에서 깨어지지 않는 사람이 웃고 있는 것, 아무리 보기 싫어도 깨어지거나 깨트릴수 없는 관계, 그것이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다. 시인은 그 관계성을 유리컵이라는 오브제를 통해 해학적으로 그리고 있다. 유리컵처럼 깨어지기 쉬운 관계 역시 인간관계라는 역설까지 포함시킴으로써 단순함을 넘어서 의미의 확대라는 시작법의 매력을 유감없이 맛 보여준다. 매 시편에서 시인은 전환 부에서 종결에 이르는 동안 모든 부정적인 요인을 희화화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 시인의 시세계가 화해를 지향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러한 화해의 제스처야말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을 가볍게 하는 비장의 무기라 할 것이다. 아무리 무거운 것이라 해도 가볍게 웃을 수 있는 관조의 무게는 사물이나 세계에 대해 갈등을 증폭시키는 작품들 못지않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이 비법은 요리사가 칼로 저민 도다리 살에게 소주 두 잔을 부어주는 제례의식(제사 중에서)이며 발을 옮길 때마다 꺾여지는 부분은 주름투성이가 되었고 빛나게 문질러둔 앞코는 긁힌 생채기로 성한 데가 없는(구두 중에서) 시인의 행보가 그 생채기로 반짝반짝 윤이 나는 것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4, 궤도를 타고 달리다
시의 횡단보도를 지나 지천명의 나이에 들어선 시인은 마음의 뒤꼍에 있는 자투리땅을 비워내고 상추와 쑥갓과 실파를 심어 이웃과 나무며 살겠다고( 오십세 중에서) 다짐한다. 다음 시집에서는 어떠한 모습으로 자신의 시 세계를 가꾸어 나갈지 알 수 없지만 일정궤도 선상에서 팽팽한 자신감과 안정감 있는 시 작업을 통해 시의 텃밭을 가꾸어나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세상이 아무리 급변하고 어지럽다 해도 시인의 행보는 관조의 여유 속에 세계와의 화해를 더욱 깊이 모색하리라 본다. 그러한 예증을 다음시편에서 찾아본다.
삶이 롤러코스터 같다면야
무슨 걱정 있으리
정말 롤러코스터 같다면야
숨 가쁘게 고개를 올라간 뒤에
어느 순간 갑자기 아래로 떨어져도
무슨 걱정 있으리
거꾸로 달리다가
빙글빙글 돌다가
순식간에 위로 치솟다가
고꾸라져도
무슨 걱정 있으리
주머니 속의 물건들이
모두 빠져 나가버려도
소리 지를 겨를도 없이
숨이 막혀 죽을 듯해도
멀미 난 개나리가
꽃망울을 터트려도
무슨 걱정 있으리
궤도를 타고 달리는데
롤러코스터-전문
그렇다.우리가 두려워 했던 건 흔들리는 궤도가 아니라 정해진 궤도에서 일탈하려는 욕망일 지 모른다. 생이란 허공을 몇바퀴 돌아 종착역에 다다르는 롤러코스터에 다름 아니기에 미지의, 혹은 미구의 세계로 나아가려는 젊은 날의 열정처럼 어지럼증을 앓던 나날들, 시행 착오를 겪을 수 밖에 없는 생의 아픈 날들도 따지고 보면 궤도를 지나가는 과정 속의 한 순간이었으리라, 그러니, 무슨 걱정 있으리 아무리 흔들려도 떨어지지 않는 궤도를 타고 달리는데......시인의 앞날이 이 시편처럼 탄탄대로의 궤도속에서 마음껏 흔들리며 뻗어나가 허공까지 끌어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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