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화산처럼 타오르는 시의 불꽃/ 강영은
- 박희진 시집(세계 기행시집 전 3권)을 읽고
1, 시인의 낙타에 동승하다.
2007년, 水然 박 희진 시인의 '세계기행시집' 3권이 도서출판 <시와 진실>에서 한꺼번에 나왔다. 한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 루미나리에의 화려한 불빛 속에서 세모의 분위기를 절정을 이루는 20일이었다. 시집을 펼치자마자 한권으로 묶기엔 너무 많은 분량이라 얄팍한 시집으로 세권을 낸다는 시인의 설명에 용기를 얻었다. 장자의 우화에 나오는 '조삼모사'를 생각하며 세권의 시집을 한 권의 시집이라 생각하고 읽기로 했다.
90여 쪽으로 된『이집트 그리스 시편』에는 '기행 시에 대하여'라는 서문이 있고 <이집트 시편>에 14편과 <그리스 시편>에 4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두 번 째 시집인,『중국 터키 시편』에는 같은 서문 '기행 시에 대하여'가 있고 <중국 시편>에 15편, <터키 시편>에 10편, <일본 시편>에 3편, <습유 시편>에 두 편의 시작품이 실려 있으며 110쪽으로 되어 있다. 세 번째 시집인 『포르투갈 모로코 스페인 시편』에는 서문으로 '김억선 선생에게'가 있고 이어서 21편의 작품이 90여 쪽의 시집 속에 게재되어 있다.
시집을 펼쳐들면 맨 먼저 자문자답의 형식을 통하여 기행시를 쓰는 이유, 기행시의 특성과 본질에 대한 사유 및 개론, 기행시를 쓰는 목적과 방법에 이르기까지 소상하게 밝히는 시인의 담론과 만나게 된다. '지구는 우주의 신비이고 인간은 지구의 신비이다'라고 시인이 쓴 1 행시의 구절처럼 인간을 존중하는 사유의 바탕에서 자연과 문화를 두루 아우르고 싶은 시인의 소망이 그 속에 드러난다. '미지에의 호기심을 채워주며 현장 답사를 통해 나와 세계의 실상을 확인하고 그 본질이해를 위해 조금이라도 접근해보려고 한다'는 시인의 말을 길잡이 삼아 우선 이집트와 그리스를 향하여 여행을 떠나본다.
기자의 3대 피라미들이
(실은 꽤 떨어져 있건만)
사막의 지평선에 나란히 보이는
위치에 다다르다.
와, 와, 우르르.....
몰려왔다 몰려가는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느라고 야단법석이다.
그림엽서나 기념품 사라고
집요하게 달라붙는 이집트 상인들,
다른 한 쪽에선
<낙타>를 타보라고 은근히 유혹한다.
여자도 타고 아이들도 타는데
난들 못하랴
끓어 앉은 낙타 안장 발걸이에 왼발 걸고
올라타려는데.....
도시 가랑이가 벌어져야 말이지,
찢어질 듯한 아픔을 감내하여
간신히 성공하는 가 싶더니만,
벌떡 일어나 낙타의 동작을
전혀 예상 못했던 이 몸은 그냥
굴러 떨어질 뻔, 혼비백산할 뻔.
지평선이 기울고, 무너지는 피라미드,
스핑크스 또한 다시 모래에
매몰되지 말라는 법이 있겠는가.
(내가 칠십 노옹임을 깜빡 잊었던 탓)
하지만 이번에도
나의 수호 령은 관대하였나니.
내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낙타 등에서 허리를 폈을 때
피라미드 꼭대기가
어쩌면 나의 눈높이일 줄이야.
-멋모르고 낙타 등에 올랐다가
이 시편이 세권의 시집을 전체적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아닐까 자문해본다. 시인의 눈높이에서 모든 기록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세상에 태어나 무덤에 들어 갈 때까지의 여정을 삶이라고 표현한다면 그 여정이란 것이 멋모르고 낙타 등에 올라타는 것과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생사고락의 모든 과정은 예기치 않는 순간에 도래한다. 다시 말하면, 삶이란 멋모르고 낙타 등에 올라타서 떠나는 여행과 같은 것이다. 여행의 동반자인 낙타는 자신의 등에 혹을 달고 그 홋 속에 들어있는 수분을 의지하여 사막이나 건너는 동물이다. 사람에게는 열사의 사막이나 황량한 고원을 지나는 자가용이 되기도 하고 물건을 실어 나르는 운수 트럭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 뿐 아니라 인생이라는 여정 속에서 극한의 인내를 감내해내는 표상으로서 곧잘 글감이 되기도 하는 동물이다. 그러한 낙타를 인생이라는 여정의 과반수를 지나 온 시인은 타 보고 싶었을 것이다. 여자들도 아이들도 타는 낙타를 온갖 고갯길을 지나 온 나로서 못 탈 바가 없잖은가, 그런 생각도 했을 것이다.
가랑이가 찢어지는 아픔을 감내하여 올라탄 낙타 등 위에서 본 것은 기울어진 지평선과 무너진 피라미드다. 시인의 상상력이 자연의 실체와 결합하여 빚어낸 풍경이겠지만 시인은 한 수 더 떠서 모래더미 속에 묻힌 스핑크스의 미래를 본다. 유한한 삶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이룩해 놓은 문명의 모든 소산물이 소멸의 한계를 갖고 있다는 것을 감지해낸 것이다. 시인의 눈은 과거의 구조물 속에서 현재를 관통할 뿐 아니라 미래까지 예견해낸다. 소멸과 생성의 유기적인 세계를 바라보는 복합적인 시인의 상상 속에 관조의 여유가 스며있다. 낙타 등에 올라탈 수 있는 게 수호 령 덕분이라니! 시의 관절이 풀리는 이 구절에 이르면 절로 미소를 머금게 된다. 마지막 시행에서 시인의 광활한 시세계를 본다. 세계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피라미드조차 그의 눈높이와 다를 바 없으니 시인의 눈높이가 불가사의의 경지에 도달했음을 말하는 그 대목에서 탄성이 절로 나온다.
1955년 ‘문학예술(조지훈, 이한직 추천)으로’로 등단한 그는 25년 동안 교직생활에 종사한 후 53세가 되던 해 시작활동에 더욱 더 정진(精進)하기 위하여 사표를 제출한다. 1960년에 발간한 첫 시집 ‘실내악(室內樂)’을 필두로 ‘연꽃 속의 부처님’, ‘사행시 사 백수’ ‘1행시 960’수와 ‘17자시 730수’. 기타’ 2005년에는 ‘소나무 만다라’시집을 출간 해 50여 년간의 열정적이면서도 끊임없는 시작(詩作)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1975년에는 미국 국무부 초청으로 아이오와 대학교 ‘국제 창작 계획’에 참가한 후 20여 개국을 순방하며 다른 나라의 문화와 예술을 접한 후 그의 시작활동은 더욱 날개를 달게 되었다 한다. ‘티벳’을 여행한 후 불교문화에 심취하여, 불교색채가 깃든 수십 수의 ‘시’를 발표하기도 했으며, 시화집, 수상 집 등을 집필한 공로로 월탄문학상, 현대시학 작품상, 한국시협상, 상화 시인상을 걸쳐 1999년에는 정부가 수여하는 보관 문학 훈장을 받는다. 2007년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으로 선출되었으며 현재는 '우이시낭송회'와 '공간시낭독회'의 상임을 겸하고 있다
시인의 지나간 행적을 쫓는 동안 낙타는 기자의 피라미드를 지나 알렉산더 대왕의 이름을 딴 고대도시 알렉산드리아를 지나 그리스로 향한다. 그동안 영원을 응시하는 투탄카멘의 황금 마스크를 보기도 하고 람세스 2세의 미이라에게 참된 영생을 얻었는지 물어보기도 한다. 오벨리스크를 가슴에 간직한 시인은 라와 아몬, 오시리스와 이시스를 소개시켜 준다. 이집트를 떠나기 전 시인은 한 편의 절창인 '피라미드 환상'을 들려준다. 다음의 시다.
피라미드를풀리지않는수수께끼라구요
그렇지않습니다
그것이홀연히풀릴 때가있어요
그것은태양이중천에솟아올라
마침내피라미드꼭대기에입맞출때
태양광선이
가장뜨겁고순수가열한침투력발휘할때
놀랍고도놀라운기적이일어나죠
그견고무비의 캄캄한불투명거대한돌산이
아주투명한빛뿜는발광체로바뀌는거에요
하여발가숭이본질로돌아간삼라만상은
손에손잡고찬미가를부르며
하나되는사랑의둘레춤춘답니다
-피라미드 환상
사전에 의하면 피라미드는 고 왕국 창건 때부터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의 종말에 이르기까지 2,700년 동안 계속 지어졌다고 한다. 왕 묘의 표준적 형태로 지어졌으며 독립 구조물이 아니라 건축물 복합체의 일부라고 한다. 피라미드 자체로서 무덤을 포함하거나 무덤 위에 세워지며 사막 높은 곳에 구획된 경내에 자리 잡고 있다. 피라미드는 고대 왕국인 이집트의 무덤인 셈이다. 그 복잡 미묘함 때문에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의 배경이 되기도 하고 흥미진진한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그것들 속의 피라미드는 무시무시한 음모가 도사리는 현장이거나 살인사건을 일으키는 음험한 곳이다. 인생을 해답으로 내 건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는 피라미드의 유명세에 걸맞게 자주 회자되기도 한다.
탐미적인 시인의 눈과 손이 빚어내는 피라미드는 우주의 본질 속에서 아름다운 환상으로 재건축된다. 무덤이 아닌 삼라만상이 하나가 되는 결합체, 순수 본연의 사랑으로 재현된다. 이글거리는 태양의 입맞춤으로 캄캄하고 불투명한 거대 돌산이 그야말로 벌거벗은,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가 되는 순간을 보여준다. 다분히 에로틱한 상상이지만 어떤 대상을 향해 완전무결한 사랑을 하고자 하는 시인의 바람이 들어 있는 것 같다. 가장 뜨겁고 순수 가열한 침투력으로 시를 사랑하는 시인의 모습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세상의 모든 사랑이 발가숭이 본질로 돌아가 삼라만상이 얼싸안는 경지에 도달하는 것, 세상의 모든 사랑이 투명한 발광체로 빛나기를 소망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러기에 바람이 불고 눈비가 와도 철갑을 두른 남산 위의 소나무처럼 시인의 시를 사랑하는 마음은 한결같다. 어느 곳에도 마음을 두지 않고 시를 쓰는 일 하나에 만 평생을 바친 시인은 때문에 지금껏 독신으로 살고 계시다. 이러한 시인에게 소나무시인이라는 별칭 외에 시의 연인, 시의 남편, 시의 아버지라 부른다면 지나침이 될까?
2, 진경산수화를 보다
시집 제 2권은 펼쳐지는 전경이 색깔부터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시집이 에게 해의 바다처럼 투명 수채화의 채색을 갖고 있다면, 중국 시편들은 진경산수화다. 그 기법은 윤곽선을 사용하지 않고 바로 색채나 수묵으로 그리는 화법인 몰골채색법처럼 때로는 아련하게 때로는 선명하게 다가온다. 늘 마음을 명경지수처럼 맑고 겸허하게 비우고 있어야 인, 사, 물, 의 진선미에 감응하게 되고 그 본질을 꿰뚫어보는 시력을 갖게 된다고 말한 시인의 시력에서 발산되는 색의 광채다.
도처에 기암, 괴석, 거암이 모였기에
황산의 호연지기 하늘을 찌르고
해와 달별들을 가지고 노나니.
은하수를 삼켰다가 토하면 바로
폭포수 되고, 뜨는 해 잡아
서쪽으로 던지면 지는 해 되고,
밝은 보름달 중천에 솟아 등불이 되면
즈믄 암봉들 고요에 침잠한다
-‘황산 송’ 중에서
시인을 따라 태산을 오른다. 태산 정상에서 둥근 해를 보고 공자묘에 알현한 다음 공자의 고향인 곡부에 들러 공자의 애제자인 안산 묘, 공자연구소 맹 묘, 맹부, 맹 림, 증자 묘까지 두루 섭렵한다. 바쁜 여정 중에서도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닷가 도시, 청도에서 열리는 한중현대시회에 참석하고 총영사관과 영부인의 대접을 융슝하게 받는다. ‘무이 산 구곡 계’ 에서 주자의 무이구곡가를 눈으로 확인하고 ‘황산의 낙일’ 속에 중국여행을 마친다.
3, 지중해의 바람결을 느끼다
삼라만상(森羅萬象)의 다양한 실상을 풍부한 감성과 예리한 시각으로 자유롭게 표현하는 시인의 진면목이 중국시편에서 골고루 보여주었다면 세 번째 시집은 지중해의 바람결이 느껴질 만큼 세밀한 묘사가 후기 인상파의 그림을 닮은 것 같다. 현장 체험을 못해 본 독자에게 객관적 상관물을 최대한 디테일하게 묘사해줌으로써 생동감 있는 현장감을 맛 볼 수 있도록 배려한 시편들은 시인의 활달한 필치로 생생하게 살아나는 것 같다. 독자에게 다소나마 친절을 베푼다는 것이 시를 산문조로 늘어지게 만든 것 같다는 시인의 말처럼 구문의 자유로움이 자칫 지리해 보일 수도 있겠으나 그 속에 담겨진 지중해의 바람은 상쾌하기만 하다. 다양한 묘사를 통해 세밀하게 그려진 풍경들이 현장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가이드를 해 준 김언석 조각가에게 보내는 서문도 감동스럽다. 시인의 활활 타오르는 생명의 불꽃을 느끼게 해 준 글이기 때문이다. 생명을 소진하며 피워낸 불꽃이 잿더미로 변해갈 때 느끼는 절망감과 허무함을 겪어보지 않은 시인이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그 열정을 이해하고 반겨줄 사람에 대한 시인의 믿음이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불꽃을 바라보아주는 누군가가 있기에 지상에 시인이란 이름이 존재하며 나머지 목숨조차 아낌없이 내던져 태울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옷 벗은 마하'와 '옷 입은 마하'
두 걸작이 나란히 걸려 있다
그런 경우 '옷 입은 마하'는
약간 손해를 볼 수밖에.
관객의 시선은 아무래도
'옷 벗은 마하' 쪽에 쏠리기 때문.
두 팔을 머리 뒤에다 두고
알몸을 아낌없이 드러낸 마하
아랫배 아래 사타구니 사이로는
치모도 보이고 배꼽이 예쁘다
불룩한 젖가슴 언저리에는
희다 못해 엷은 푸르스름 떠도누나
복사 빛 볼에 앵두 빛 입술 지닌
아리따운 여인이여, 고혹적 눈을 뜬 채
당신은 지금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가?
<그건 나도 몰라요, 그런 우문은
이 몸을 부드럽게 받쳐주고 있는
침대의 시트에게나 물어 보시라구요>
-고야“옷 벗은 마야 -프라도 미술관에서
프라도 미술관에서 고야의 그림을 직접 본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가슴 뛰는 일이다. 자유 시간까지 할애해서 미술관을 한 번 더 다녀온 시인은 그래서인지 벨라스케스 <궁정의 시녀들>을 포함해서 프라도 미술관을 모티프로 삼은 시편이 모두 세 편이다. 고야 얘기를 조금 해야 할 것 같다. 고야는 스페인의 궁정 화가이자 왕실가족의 초상화를 그리는 직업화가로서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초기 고야의 리얼리즘과 생생한 삶의 묘사로 높이 평가 받았다. 후반에 접어들면서 그의 환상적이고 섬뜩한 분위기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추상주의가 시작되고 미술에 대한 형식적 접근이 시도되었던 20세기 초반에는 물감을 다루었던 고야의 현대적인 방식이 강조되기도 했다. 끔찍한 갈등으로 점철되었던 20세기가 끝나갈 때에는 고야가 보여주었던 세계에 대한 암울한 비전이 울림을 가졌다. 21세기가 시작된 지금, 그 암울한 비전은 더 이상 울림을 가지지 않지만 고야는 여전히 스페인 예술의 자랑거리로 남아있고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가 초기와 후기에 그린 가장 대표적 작품을 시집 속에서 더듬은 셈이다.〈옷을 벗은 마하 The Naked Maja〉·〈옷을 입은 마하 The Clothed Maja〉모두 같은 구도에 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으나 누드화가 좀더 선명한 명암대비로 극적 효과를 강조했다. 음영의 묘사가 탁월한 그림의 장점이 거침없는 시인의 필치 속에 생생하게 살아나 살아 있는 여인을 보는 듯 하다.
골고다 아닌 마드리드의 언덕에서
이런 참혹한 대량 학살이
자행 된 게 사실인데. 그걸 후세에 전해준 건
오직 고야의 이 그림뿐 이구나
비참과 절망이 끝날 날은 없으려나.
-고야(5월 3일의 총살) 중에서
비참한 정경이 상세히 묘사 된 시편을 읽으며 스페인 내전이 발생했던 당대의 비참했던 사건을 상상해본다.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행할 수 있는 비인간적인 행위에 대한 고야의 극적이면서도 감동적인 묘사가 시인의 시 속에서 장대한 비극미를 발한다.
3, 에필로그
시인은 기행 시 담론에서 여행에서 돌아온 후 기행시를 못쓰게 되면 마치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강박관념에 빠지게 된다고 고백한다. 여행 중에 축척된 온갖 이미지, 상념, 느낌, 강렬한 인상 등이 뒤죽박죽으로 들끓어 두뇌는 현기증이 일고 가슴은 터질 지경에 이른다는 것이다. 시를 쓰는 숙명과 더불어 기억을 기록해두는 역사가로서의 운명마저 짊어진 듯하다. 죽음, 허무, 소멸과 싸워 이길 때에 찾아오는 시 정신의 승리라고 생각된다. 시 정신에 대해 '정신집중 상태를 지속해서 예술가로서 지켜야할 덕목을 지키는 것이 시인의 자세'라고 쓴 시인의 글을 본 적이 있다. 시인의 모습은 시 정신의 현현한 모습 같다. 시인의 모습이 오랜 세월 동안 도를 닦아 온 도인과 다름없음을 볼 때 '시력은 도력이다' 라고 생각해본다. 인간으로서 밥 먹고 집짓고 사는 것을 넘어서 인간이 무엇을 하러 왔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철학을 몸에 담고 사셨던 공초 오상순 선생과 죽음에 관한 시를 쓰기 위해 젊은 날 이름 모를 산소 앞에서 사흘 밤낮을 지냈다는 구상 선생의 뒤를 이어 도력이 높은 시인의 계보에 시인이 우뚝 서 있다고, 한 것은 시인의 오래된 친구인 성 찬경 시인께서 하신 말이지만 이 말은 도를 닦듯 시를 써 왔던 시인의 모습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결좌 부심의 각고 끝에 성취된 결과물임을 표현하는 말이라 생각된다. 문득시인의 여행시에 대한 박제천 시인의 글이 떠오른다.
여행 시를 만난 시인의 활달한 필치는 거침이 없다. 구문의 자유로움 속에 신전과 박물관의 미학적 가치가 녹아나는 글을 읽으면서, 초기시의 주옥같은 언어의 세공으로 빚어진 단아한 공간의 조각에서는 결코 접할 수 없었던 육성이 단순, 소박, 고졸한 품격의 바탕이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박제천 “한국시학” 계간 평
“단순 소박 고졸하면서도 거침없이 활달한” 필치를 따라 아프리카를 거쳐 아시아, 남부유럽까지 시집 속의 여행을 마치느라 하루가 훌쩍 지나갔다. 활화산처럼 활활 타오르는 시의 불꽃이 내 생명에 불화살을 당긴 하루였다.
피조물인 삼라만상의 진수들은
하나로 꿰어져서 높이 탑으로 치솟기 원한다.
탑 속에선 나선을 그리면서 가마득하게
지금도 부단한 상승일로를 꿈꾸고 있다
하여 마침내 하늘의 심오부에 닿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렇게 되면 천사들의 우렁찬 나팔 소리 들리리라.
해와 달 별들이 한자리에 모이리라.
천당과 지옥은 손잡고 춤추리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중에서
높은 탑처럼 미지의 곳으로 이끌어준 시인께 감사드리는 마음이 솟구친다. 시 낭독을 하다 무대에서 이승의 인연을 마감하고 싶다는 시인, 이 시대에 진정한 시인으로서 거보를 내딛는 몇 안 되는 시인 중의 한 사람이기에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기원해 본다.
문학과 창작 2008, 봄호
박희진
경기도 연천에서 출생하여 고려내 영문과를 졸업하였고 1975년에는 미국 아이오와 대학교 <국제창작계획> 과정을 수료했다. 1955년 「문학예술」 추천으로 등단한 후 1961~67년 시동인지 「육십년대사화집」을 주재하였고, 자타가 공인하는 시낭독 운동의 선두주자로서 1979년 4월부터 '공간시낭독회' 상임시인을, 그리고 현재는 '우이시낭송회'와 '인사동시낭송회' 상임을 겸하고 있다. 월탄문학상, 한국시협상 등을 수상하였고, 1999년에는 보관문화훈장을 받았으며, 2007년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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