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그리움의 접면/ 강영은
-박은경 시집 "사랑은 연극이 끝날 때 아름답다" 해설
독일 시인 R,M,릴케가 ‘시는 체험’이라고 말한 바 있듯, 체험은 시인으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하는 바탕이며 원동력이다. 시 공간을 초월한 시인의 체험이 몸 안에 무르녹아 언어롤 도구로 하는 미적 구축물로 탄생 하는 것이고 보면, 체험은 세계와 자연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적 산실이며 시의 보물창고인 셈이다. 때문에 체험은 상상력 못지않은 시의 바탕이 되어 시인의 작품 속에서 다양하게 변주된다. 이번에 받아든 박은경 시인의 원고를 보니 시인이 바라보는 세계와 시인의 내적 합일에 조응하는데 있어서 상상력보다는 체험에 더 비중을 둔 것처럼 여겨진다. 자신의 체험을 모티프로 삼는 그녀의 시 작업은 때문에 보편적 세계를 시적 대상으로 삼았기보다 개인적 주관적 대상물을 통하여 자신의 내면세계를 형상화하고 그 속에서 위안을 강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개인적, 주관적인 대상이 빚어내는 풍경들은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 등,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의 인물들과 주변에 흩어져 있는 사물들, 혹은 자연을 모티프 삼음으로써 자신이 보고 느끼고 생각한 체험을 생생하게 다시 그려내는데 든든한 밑받침이 되고 있다. 시에 있어서의 중요한 덕목인 진정성이 잘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그의 시편들은 도회적이거나 문명적인 것들을 시적 대상으로 삼기보다 자연에 귀를 기울이는 향토적인 정서에 시의 기조를 두고 있으며 그 속에는 잊혀 진 토막이 말도 자연스레 자리하고 있어서 봇도랑, 나승개, 고샅 등 정감어린 단어가 구수한 고향 내음을 풍기기도 한다. 시를 쓰는 행위가 미적 자의식 속에서 세계와 자기를 구원하는 문학적 구원의 방식이라 한다면 이처럼 체험을 위주로 하는 그녀의 시들은 자신을 구원하기 위한 성과물로 여겨진다. 그 속에는 사물만이 아니라 마음속의 풍경화까지 정갈하게 들어 있는데, 현란한 기법이나 거대담론에 매달려 오만해지거나 난해함에 빠진 시편들과는 달리 소박하고 진솔한 표현들로 정감이 가득 어려 있어 우리네 삶과 근접한 시의 정서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때문에 그가 그려낸 마음속의 풍경화들은 읽은 이로 하여금 평화와 위안의 공감을 제공하는데 충분하다. 이러한 정서 속에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과 그 속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주위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면면히 녹아 있음을 볼 수 있는데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랑으로 감싸 안으려는 시인의 순결한 의지가 돋보인다. 그래서인지 시인은 사랑의 불모지대인 현대와 문명이라는 시공간을 벗어나 자신의 지향하는 순순 이상향의 세계, 다시 말하면 자신이 지금껏 지나왔던 시간과 공간(가족과 자연)을 재현해내려는 소박한 꿈을 보여준다. 이 시적 발화지점을 중심으로 특별히 두드러지는 시편들을 몇 가지 유형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길과 떠남의 미학
언어가 시라는 옷을 입고 나타나는 이 발화지점에서 시인은 투명수채화처럼 그리움과 기다림을 노래한다. 영화 ‘길’의 여주인공 ‘젤소미나’의 모습에서 길의 원형을 찾아본다면, 길은 그리움과 기다림, 사랑을 바탕에 깔고 있다. 그녀의 시편들은 이러한 그리움과 기다림 사랑을 바탕에 깐 길과 떠남의 미학을 노래한다. 시편들을 보기로 하자.
5월의 신부는 기차를 탔습니다
빈 손 뿐인 소박한 마음을 가지고
푸른 물빛에 반짝이는
라일락 향기를 온몸으로 적시었습니다
속살의 향기를 더듬으면
나무껍질처럼 까칠한 손
변해버린 손금마저도
삶의 행로라 여기며 살자했습니다
콩깍지 씌운 눈 먼 사랑
밭고랑처럼 패인 얼굴을 훈장삼아
가슴에 용광로를 지피며
아직도
5월의 신부는
기차를 타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 <5월의 신부>전문
5월을 모티프로 삼아 쓴 이 시편은 오월신부라는 메타포 속에 ‘시’의 이상향에 도달하려는 시인 자신의 모습을 그려냈다 할 수 있겠다. 이 모습은 두 세계의 만남이 동일성으로 이루어질 때 생기는 미적체험이라 할 수 있는데 까칠한 손, 변해버린 손금마저도 삶의 행로라 여기며 살겠다는 시적 화자의 의지를 통해 시인은 계절의 여왕인 5월처럼, 신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오월 신부처럼, 푸르른 생명력을 지니고 여전히 달리고 있음을 표상한다. 그 의지는 생이 다하는 날까지 멈추지 않고 달릴 것임을 다음 시편에서 시인은 다시 한 번 보여준다.
흰 눈이 온 세상을 덮은 날
철로 옆 비닐하우스
줄지어 눈요기해도 좋을 것 같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세찬 눈발
앞으로만 전진할 줄 아는 기차
계속 진행 중이다
나도 진행 중이다
종착역이 아니어도 좋다
마음 맞는 간이역에 내려
기다려주는 이 없고
기다릴 사람 없어도
마지막 기차가 올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는 것
무엇을 느낄 것인가
흰 눈이 온 세상을 덮는다.
-<기차여행> 전문
‘기다려주는 이 없고 기다릴 사람 없’는 간이역이야말로 언제가 우리가 내려야할 여정의 종착지일지 모른다. 마지막 기차가 올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는 것이 방법이라면 5월의 신부는 그 종착역을 향하여 밤의 고속도로마저 통과해야 하는 의지를 동반한다.
감겨오는 눈꺼풀
입술로 악물며
삶의 고통 가슴으로 짓이기고
흐느끼는 달빛의 뒤로 떠나가야만 한다
시래기 국밥 한 그릇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며
아직도 식지 않은
타이어를 굴리며 떠나가야만 한다
-중략-
바퀴살에 걸린 어두움
길 위에 나 뒹굴고
새벽이 천천히 문 여는 소리
미끄러지듯 지나치며 떠나야만 한다.
- <밤의 고속도로>부분
밤의 고속도로는 시인의 지나가야 할 시의 길인지도 모른다. 눈부신 초록의 세상을 달리고 싶은 시인에게 길은 이처럼 양면성의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시인은 어떠한 고통도 감내하며 새벽의 문이 열릴 때까지 모든 그리움과 기다림을 부여잡고 쉬지 않고 시적 여정을 지속하겠다는 결의의 노래를 부른다. 이처럼 길과 떠남을 노래한 시편들에는 섬, 난장, 백양사 같은 공간적 배경과, 작약, 동백 같은 자연적 대상과, 떠난 이와 어릴 적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 등이 고루 표현되어 있다. 애상의 정조가 다소 지나친 점은 있지만 전통적 서정시로서의 주된 형태를 취하고 있는 까닭에 운율과 가락이 남실대는 그녀의 시편들 속에는 토박이말과 향토적 정서가 풍부하여 울림이 맛깔난 시편들도 여럿 있다.
2, 향토적 정서를 지닌 울림의 시
각설이 엿장수 덕지덕지 분칠한 것이
흐드러지듯 열어젖힌
네 속살 하얀 자리 같다
엇갈린 가락에서
힘줄이 튕겨 터져 나오고
몸서린 노래가 흘러나온다.
- <난장 이랑에서>부분
삭신이 쑤시고 문드러져도 제 흥에 겨워
땅거미 어슬어슬 내리치는데
넉장거리 하는 저 무자리 좀 보소
늘어진 바지말기를 똥깡 추켜올리고
흩날리는 벚꽃 잎을 눈썹으로 맞받으며
껍죽거리는 저 무자리 좀 보소
제 장단에 겨워 엿가락 박자 엇박자 되고
탁주 벌컥거리며
온 세상 삼킬 듯 덩실대는 저 무자리 좀 보소.
-<무자리>전문
하늘을 두드린 영혼
허공을 가르는 신명 이였다
굿판의 춤사위였다
-<사물놀이>부분
난장이란 정해진 장날 외에 특별히 며칠간 더 여는 장을 말한다. 매일 장이 서는 도시와는 달리 5일장, 7일장 등, 정해진 날에 장이 서는 시골에서나 있음직한 장날 풍경일 터이다. 엿장수가 엿을 치고 카세테이프 장사의 전축에선 풍악이 울고 임시로 비끄러맨 천막들이 펄럭이는 난장 골목은 오늘날의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풍경이다. 이처럼 사라져가는 우리의 생활 풍습을 근거리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시인에게 있어서 다소 축복받은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한낱 신기한 풍경으로 지나쳤을 주변의 사소한 풍경까지 시적 대상으로 삼아 위의 시편에서 보듯 생동감 있게 재현시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우리 것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진 시안이 존재 할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인 것이다. 우리 것에 천착하는 시인의 눈은 여러 겹의 눈을 가진 것처럼 이러한 대상을 두루 포착해낸다.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세동리
마이산 정기 흙으로 심지박고
흙 주어먹고 자란 똥꾼친구 한곳에서 만난다
세상살이 무서운 것 하나 없이
무쇠 솥에 시래기 듬뿍 넣고
미꾸라지 열탕에서 녹아내리니
장작불에 끓어오르는 우정 무엇으로 답하랴
오가는 소주잔에 별명 불리우고
못 보여준 날의 안부에 또 술잔 부딪치니
시간의 흐름 속에 깨복장이 눈물 글썽이더라
앞산 달님도 부러워서 마당가를 내려다보고.
- <똥꾼친구>전문
똥꾼 친구라 하면 똥 장군을 지던 친구일까, 아니면 똥거름을 나르던 친구일까 친구의 뚜렷한 역할이 궁금해지는 시이다. 어릴 적 친구들과의 해후장면을 가감 없는 진솔한 표현으로 그리고 있는 시로써 ‘시는 감정의 표출이 아니라 감정으로부터의 도피이고, 개성의 표현이아니라 개성으로부터의 도피이다’고 말한 T.S.Eliot나 ‘좋은 시는 내포와 외연의 가장 먼 양극에서 의미를 통일한 것이다’라고 말한 Allen Tat의 이론에는 다소 벗어난다 할지라도 P.B.셸리가 말한 ‘시는 최상의 마음의 가장 훌륭하고 행복한 순간의 기록이다. 하나의 시란 그것이 영원한 진리로 표현된 인생의 의미이다.’라는 입장에서 볼 때 그야말로 가장 행복한 순간의 기록이 아닌가 한다.
봇도랑 곁에는 나숭개 너절하게 널려
한갓진 부룩송아지 풀잎과 입맞춤 하네
어리 속 병아리 어미 따라 구름과 발장단 맞추고
고샅에는 산수유 몸단장 하네
어깻죽지 군시러워 씀바귀 윙크하며
한쪽 팔 들어올리고
잿간 옆 목걸이 한 누렁이
아지랑이 보고 짬짬이 뜀박질 예행연습 하네.
-<봄>전문
이 시 속에는 봇도랑, 나숭개, 부룩송아지, 어리, 고샅, 군시러워, 등 귀에 익숙지 않는 낱말들이 등장한다. 풀이하자면, 봇도랑은 봇물을 대거나 빼게 만드는 도랑이고 나숭개는 냉이의 전라도 사투리다. 부룩송아지는 길들이지 않는 숫송아지를 말하는 것이고 어리는 물고기가 떼를 지어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둥글고 긴 대형이나 진법을 말한다. 고샅은 시골마을의 좁은 골목길을 말하며 군시러워는 벌레 같은 것이 살갗에 붙어 기어가는 듯한 느낌을 의미한다. 향토적 느낌이 물씬 풍기는 낱말들을 시어로 사용함으로써 시인은 우리의 고향을 다시금 되 생각게 한다. 아름답고 정감 어린 토박이말은 그 어떤 시어보다 진정성을 지닌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처럼 아름다운 우리말을 되살리는 것은 이 땅에 사는 시인들의 또 다른 사명일 터이지만 우리 것에 대한 지속적인 애정과 나아가서는 애국 애족의 민족관이 형성되어야 관철 될 수 있는 하나의 과제일 것이다. 누구보다 우리 것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과 그것을 시로써 천착해내는 시인의 향방을 가늠해 볼 때 이러한 시 작업에 좀 더 힘을 싣는다면 시인의 시세계는 백석이 그러했듯 한층 깊이 있는 향토적 색깔과 개성을 지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3, 사랑과 그리움의 시
원고를 읽어 내려가던 중 가장 많은 등장하는 단어와 접하게 된다. 그것은 사랑이다. <고흐의 해바라기>, <그대는 나입니다>, < 그대와 나와는>, <동백시편>, <연인>,<사랑시편>, 그리고 표제시인<사랑은 연극이 끝날 때 아름답다>등, 그 외에도 여러 편이 사랑을 화두로 삼고 있다. 그 사랑을 받쳐주는 또 하나의 단어로 그리움을 들 수 있다. 그리움은 주로 어머니를 그리는 사모곡이 주류를 이루는데 막내딸이라는 시인의 개인적 사유가 크게 작용을 미친 듯하다. 그리움의 시편들은 <그리움1,2>, <기다림1,2>, <어머니의 봄>, <연필>, <의자와 어머니. <작약의 비밀>, <울 엄니>, <내 친구>, <세상 밖에는>,등이 있다. 우선 이 시집의 표제시를 읽어 보기로 하자.
하나의 선율은 춤으로 운다
악기는 날개를 달듯 춤으로 운다
달팽이의 속울음
고양이의 왈츠
구슬픈 음률은 춤으로 서러웁다
지휘자는 백발의 정열로 울고
악사는 일체의 떨림으로 운다
연극이 끝난 뒤
흐트러진 관람석처럼
정열은 바닥에 나뒹굴고
관객은 무대를 껴안고 운다.
-<사랑은 연극이 끝날 때 아름답다>전문
이 시 속 장면에는 음악이 있고 악단이 있고 관객이 있다. 어쩌면 뮤지컬인지도 모르겠다. 비극적 장면이 연상되는 것은 ‘운다’라고 반복 표현된 종결에 있다. 각 연의 각운을 장식하는 ‘운다’라는 표현은 어쩌면 연극의 실제적인 장면이 슬픈 것이 아니라 연극을 바라보는 화자의 마음이 울음으로 가득 차 있는 까닭일지 모른다. 공간을 날아다니는 음의 날개가 서럽고 귀 속을 파고드는 선율이 슬프고 지휘자의 백발이 서럽고 흐느끼듯 연주하는 악사들이 서럽고 흐트러진 관람석이 서럽고 무대를 주시하는 관객들이 서럽다. 춤으로 가시화된 이 울음의 정체는 무엇인가. 시인은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사랑을 하는 순간 그것은 각본에 의한 한편의 드라마처럼 비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아니 비극이라 말하고 싶은 것이다. 사랑의 기쁨을 주시하기보다 사랑의 아픔, 혹은 슬픔에 시인이 주목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 시속에는 불분명하다. 그녀에게 있어서 사랑이란 무대 위에 올려 진 한편의 연극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연극이 막을 내리듯 사랑이 끝나는 순간에야 사랑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는 건 분명 비극이리라. 사랑의 시작과 끝의 간극에는 묘한 트릭이 숨어 있다. 알면서도 속고 모르면서도 속는 사랑의 속임수에 대해 ‘사랑은 연극이 끝날 때 아름답다’라고 외치는 시적 발화에는 사랑의 이율배반적인 정체성을 간파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그럼에도 이러한 아이러니의 근저에는 인류최대의 풀지 못할 과제이자 영원한 희구의 대상이 되는 사랑, 그 불멸의 이름이 있다. 시인의 구체화 시킨 사랑은 어떤 것인지 두 편의 사랑시를 읽어보자.
사막의 골짜기
땅 꺼지는 아픔을 깨고
보랏빛 환희 맛 보았습니다
꽃향기 온 천지를 물들인 길 걸었습니다
어두운 하늘 파도가 일렁이는 것처럼
허공을 치는 독백의 연속입니다
이다지도 늦게야 당신의 사랑 알았습니다
겸손하신 당신의 사랑
성령으로 강건케 하시는 속사랑을
당신의 형상대로 만드신 나는
오만과 편견으로 죄를 범한 날을 살았습니다
무릎 꿇고 기도하오니 용서하소서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
-< 사랑.1>전문
뽀얀 양면지의 사랑이고 싶습니다
밤새워 그려내고 싶은 사랑,
지우개가 필요하지 않는
가슴 타는 그림을 그려내고 싶습니다
밥상 위 숟가락과 젓가락 같은 사랑이고 싶습니다
항상 껴않는 속사랑,
양보하며 웃어줄 수 있고
온몸으로 느끼는 그런 사랑
주발 같은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넘치게 담아 낼 수 있는 사랑
다 비워내면 또 담아드릴 수 있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사랑 말입니다
목화이불 같은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예쁜 가슴 부풀은 솜으로 어루만져주는 사랑
엄마 가슴처럼 포근하고
아빠 어깨처럼 든든한 그런 사랑이고 싶습니다.
-<사랑.2>전문
<사랑,1>은 신을 향한 성속의 사랑이다, 아가페라 부르기도 하는 신의 사랑은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 사랑이다. 이 사랑에 부응 하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은 언제나 용서를 간구 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모습을 지닐 수밖에 없다. <사랑,2>는 범속의 세상 속에서도 따뜻한 사랑을 하고 싶은 화자의 소망은 육적인 욕망보다 보다 여전히 정신적 사랑에 속해 있음을 보여준다. 이 두 개의 사랑 가운데에는 ‘가슴이 숫검둥이 되’어도 ‘와로움을 삭여버리는‘영혼은 스러질 때까지/ 사랑만 먹’고 사는 ‘불타는 사랑’인 에로스의 사랑도 있다. 그 사랑의 구체적 발현은 ‘연인’ 혹은 ‘그대’이고 ‘어머니’를 사랑하는 막내딸의 ‘어린사랑’도 들어 있으며 자연과 사물을 ‘접接’하는 사랑이기도 하다.
4, 사물, 혹은 시와 접接하다
시인은 개인적 주관적 대상물을 통하여 자신의 내면세계를 형상화하고 그것으로 자신의 위안을 강구한다. 때문에 자신이 만나는 모든 사물은 객관적 자아의 위치로 이입이 된다. 그녀도 예외는 아니다. 그녀가 어떻게 객관적 주체로서 시와 접하게 되었는지 그 지점을 찾아보기로 한다.
흙을 밀치면서
땅 꺼지는 아픔을 여미었지
머리가 견딜 수 없도록 간지럽던 날
뾰족한 싹을 틔웠고
이슬로 목축이며
가랑비 맞았었지
번개와 천둥이 무섭긴 했지만
꿀맛 같은 소나기의 시원함을 그리워하며
꽃향기 맡을 생각에 행복했었지
고욤나무의 밑동,
감나무의 윗동이 접接 부쳐지던 날
새들은 숨죽이며 지저귀었지.
-<접接>전문
‘고욤나무의 밑동, 감나무의 윗동이 접接 부쳐지’ 듯 그녀는 자연과 사물과 접하여 하나의 열매가 열리기를 꿈꾼다. 케케묵은 일상의 나이테 속에서 열매를 꿈꾸는 그 지점에서 그녀의 시 작업이 비롯된 것이 아닐까, 머리가 견딜 수 없도록 간지럽던 날, 비록 ‘천둥과 무섭긴’ 해도 ‘땅 꺼지는 아픔’을 이겨내는 방법으로 이슬과 가랑비와 꽃향기와 더불어 ‘시’라는 열매를 꿈꾸기 시작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연골의 누름으로 지탱해온 시간의 아픔으로//너덜거리는 밑창을 무심히 바라보다//느슨해진 핏줄의 교차점을 어루만지며<인고의 노래, 부분>, 죽은 시인은 피를 토해가며/ 밝음 뒤의 그림자를 가슴에 품으며/혹독한 시련을 풀어 나가고자한다<죽은 시인의 사회, 부분>고, 말하는지 모른다. 그리하여 시인은 세상을 향해 시의 열매가 된 자신의 소박한 꿈을 노래한다.
그대 가슴이 캄캄할 때
나에게 와 기대세요
뻥 뚫린 하늘처럼
오색 무지개를 담아 놓고 있을게요
그대 온몸이 조여들 때
나에게로 와 기대세요
쭉쭉 뻗은 느티나무처럼
새장의 안락함을 지어놓을게요
그대 쓸쓸하여 허전함을 느낄 때
나에게로 와 기대세요
햇살 먹은 나락처럼
고봉으로 배부름을 채워 드릴게요
그대 울컥 그리움이 솟구칠 때
나에게 와 기대세요
헤질럿 커피 향을 온 몸에 듬뿍 담아
눈물 나도록 아름다운 세상을 안겨 드릴게요.
-<나의 낮은 사랑노래>전문
시적 메타포를 지닌 아름다운 한편의 이 서정시는 말 그대로 독자에게 시인이 주는 진심어린 마음의 선물이다. 시인의 시에 대한 사랑이 무르익어 그리움과 허전함과 답답하고 캄캄한 마음에 눈물 나도록 아름다운 세상을 안겨주기를 바라는 마음 가득하다. 그러고 보면, 박은경시인은 첫 시집을 통해 부지런히 시의 길을 떠났고 여전히 그 길을 달리는 중이며 그 길 위에서 이제 막 피어나려는 중인지 모른다. 사랑이라는 겉옷을 입고 그리움과 기다림이라는 속살을 어루만지며 쭉쭉 뻗은 느티나무처럼 이름다운 세상을 향해 길을 내는 중인지도 모른다, 밤의 고속도로를 지나 듯 때로는 암담함에 처하기도 하겠지만 그것이 시인의 길임을 누구보다 알지 않을까 한다. 다소, 비유적이지만 <M.아널드>의 말로써 첫 시집을 상재하는 시인의 노고를 위로해드리고 싶다. ‘내용이 끝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 황금어의 피안에, 도시 성곽의 외부에, 토론의 형자(形姿)를 뒤로 하고, 사고 체계를 벗어나서 신비로운 장미는 개화한다. 서릿발의 열기(熱氣) 속에, 도배지의 희미한 무늬 속에, 제단의 뒷벽 위에, 피어나지 않는 불꽃 속에 시는 존재한다.’고, 앞으로 불꽃같은 정열로 부단히 그 길을 걸어감으로써 더한 성취를 얻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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