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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비단구렁이

버려진 휴대폰

by 너머의 새 2015. 9. 7.

버려진 휴대폰/강영은





길모퉁이 쓰레기통 속에 버려진 낡은 휴대폰을 본다
몸 구석구석 보이지 않는 길을 더듬다 가파르게 높아져 가는
음계를 헛디뎠는지 그녀의 날개가 부서져 있다
지상의 어떤 말보다 천배나 더 정밀한 성감대인
허공 속에서 익화(翼化)된 제 울음만 받아먹고 사는 동안
그녀의 몸은 깊은 동굴이거나 버려진 폐광이
되고 만 것일까
네 몸은 더 이상 진화될 수 없어,
너는 이미 날개를 달았거든,
더 이상 발신음도 수신 음도 들리지 않는 적막 속
오래 전 수신된 까만 문자메시지만이
화석박쥐의 똥처럼 각인(刻印)된 채 굳어져 있는
몸 속의 캄캄한 길을 뚫고
외마디 초음파를 던지는 그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그를 향해
고감도의 안테나를 세웠던
그녀는 정말이지, 머나먼 신생대의 밤을 향해 돌진했던
한 마리 눈먼 박쥐가 아니었을까

저기, 창자가 흘러나온 채 버려져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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