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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비단구렁이

소나무 자폐증

by 너머의 새 2015. 9. 7.

소나무 자폐증/강영은




바람이 불고 리기다 소나무가 꿈틀대자
바람찬 소리를 귀담아 듣던 솔방울의 둥근 귓볼이 흔들리고
딱따구리에게 통째로 내맡겼던 옆구리의 통증 속으로
바늘잎들의 날카로운 말이 직선으로 쏟아진다

제 몸의 중추신경을 단단한 나이테로 묶고 있는 몸통은
정작, 거무튀튀한 껍데기로 제 안의 적막을 껴안고 있다
저 寂寥의 기표와 기의 사이에 소통되지 않는
어떤 세상이 있어 그 까칠한 침묵들이 몸의 안과 밖을
차단하는 것일까

바람이 한 차례 세차게 불자 가지 끝 잎들이 날아갈 듯
더 소란스러워진다

제 몸의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할 말은 많으나
말하지 못하고 할말도 없으면서 계속 말하는*
무성한 잎의 소나무 한 그루

이파리들의 사소한 차이에 부대끼는 제 안의
다른 세상을 보고 있다






"세상의 반은 무언가 할 말은 있으나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고, 나머지 반은 할 말도 없으면서 계속 말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로버트 프러스트"의 글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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