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암 오르는 길/강영은
관악산 연주암 오르는 길, 커다란 바위 위
민달팽이 한 마리
오가는 등산객들의 발자국 소리에 아랑곳 않고
꼼짝없이 앉아 있다
아니다, 전속력으로 움직이고 있는 달팽이를
내 몸의 속도가 측량하고 만 것인데
달팽이도 제 몸을 스쳐 지나간 나를
바람이거나 햇빛의 결로 생각할지 모른다
하루를 천년처럼 천년을 하루처럼 제 몸을 밀어
달팽이가 당도한 저, 등속도의 삶 속에는
몇 억 광년의 길을 달려온 별빛도
가만히 제 빛을 내려놓고 있으리라
삶의 방향을 트는 몸밖의 표면장력 때문일까
한참을 가다 뒤돌아보니
달팽이 대신 달팽이가 지나 온 길들이
바위를 꽉 붙들고 있다
이제, 저 바위가 뒹굴거나 구르면서
제 몸에 새겨진 길들을 비워내리라
계곡의 물따라 여기저기 핸드폰이 울린다
문명의 소리도 이파리처럼 무성하게 우거진
연주암 오르는 길
배낭을 짊어지고 땀방울을 흘리는 사람들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정상을 향한다
속도로 꽉 차 있다
녹색비단구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