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비단구렁이(지혜사랑시인선)(14) 표4
자연과 인간의 원형질적인 교감이 너무 산뜻해서 그의 시를 읽는 동안 꼭 그의 몸을 만지고 있다는 엉뚱한 착각까지 든다. 앙가조촘 떼를 쓰는 사춘기 소녀의 눈망울도 숨어있고 사소한 풍경을 적요와 초월의 소재로 짐짓 부리면서도 입 앙다물고 시치미 떼는 인고의 여인상도 두루 녹아 있다. 마술사가 맨 손바닥을 쫙 펴면 금세 하양 비둘기가 포르르 날아오르듯 ‘오래된 상처’를 ‘기쁨’으로 변용시키는 어렴성 없는 마력의 시적 곡예가 눈부시다.
-오탁번(고려대 교수, 한국시인협회 회장)
강영은 시인은 ‘녹색비단구렁이’라는 이색적 소재를 대상으로 하여 심미적 감각을 아름답게 표상하고 있다. ‘어머니’를 직접 청자로 설정하고는 있지만, 시의 화자는 스스로 ‘녹색비단구렁이’가 되어 “천둥번개 치고 비오는 날”에 몸 밖으로 범람하는 강물이 되고 싶다고 토로한다. 그렇게 ‘생각’이 아닌 ‘몸’을 발견하는 과정 자체가 화자가 소망하는 존재 방식이 된다. 독성이 오른 목을 공중에 매달고 “천둥벌거숭이처럼 내 몸의 죽은 강물을 퍼 나르고” 싶다는 소망은, “내가 건너야 할 몸 밖의 세상”을 견디게끔 하는 심미적 환상을 화자에게 부여한다. 그렇게 “몸에 똬리 튼 슬픔”을 건너 화자는 “몸의 비단 옷을” 벗고 “깊이 모를 슬픔으로 꿈틀대는 한 줄기 물길”로 거듭나고자 한다. ‘녹색비단구렁이’는 이처럼 ‘미(美)’와 ‘추(醜)’의 속성을 한몸으로 결속하면서, 시인이 꿈꾸는 새로운 존재론적 욕망의 모습을 보여준다. ‘생각’과 ‘죽음’과 ‘슬픔’과 ‘덧칠된 희망’을 건너서 “깊이 모를 슬픔”을 지닌 생생한 ‘몸’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것이 그 욕망의 내용이다
-유성호 (한양대 교수, 문학평론가)
나는 나의 <명시감상>에서 강영은 시인의 "벌레시인"을 다룬 바가 있지만, 나는 아직도 그를 '벌레시인' 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쓰다'와 '쓴다'의 미묘한 언어학적 차이점을 통해서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고' ' 낫 놓고 니은자는 더더욱 모르는', '밤골아저씨'의 그 서슬퍼런 낫날을 떠올리며, 그토록 울퉁불퉁하고 맛이 좋았던 알밤들- 몰래 훔쳐 먹었던 알밤들-을 '꿀꿀이 바구미'처럼 파먹던 추억을 묘사해내는 솜씨는 가히 천하 제일의 명장의 솜씨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시는 시인의 삶의 터전이며, 그의 비옥한 텃밭이다. 강영은 시인의 <녹색비단구렁이>에는 그의 언어 (관능)의 싹이 트고, 그 언어의 꽃이 피고, 그 언어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열려 있다.. 오오, 돌부처 같은 심장을 뚫고 들어가, 너와 나의 은산철벽마저도 허물어 버리는 언어의 나무들이여!
-반경환(애지) 주간, 문학평론가
목차
시인의 말
누구는 꽃이라 햇고 누구는 집이라 했고
누구는 독이라 했다
피엇다 지고, 세웠다 무너지는 동안
시퍼렇게 독 오른 나를
나에게 바친다
1부
매미 시편
벌레시인
허공 모텔
제논의 화살
투명 개구리
비누論
푸른 식탁
능소화
거꾸로 가는 문장
발칙한 속도
사막장미
장자 연못
물로 지은 옷
디오게네스의 낮잠
한 알의 사원
왜목마을을 지나며
2부
빗방울 마을
두 입술이 내는 소리
오래된 유적
문자의 세상
노약병잔잉전용석
설법 한 접시
우주선
벌레들의 지구
피그말리온의 이모티콘
아라크네의 식탁
클럽 아마존의 악어 사냥법
진흙 스프
감자의 9가지 변주
소나타, 비창
그가 나를 쏘았다
작시법作詩法
3부
녹색비단구렁이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
바늘들
건빵의 휴가
아버지 별
둥근 저녁
오래 남는 눈
바람의 입
먼나무
따뜻한 밥상
닻
호박
수선화
담쟁이
모자帽子
접시 위의 한 문장
4부
소비되는 봄
수세미 천궁도
게발선인장
오르간 연탄을 위한 프렐류드와 푸가 c장조
그림자연극
알밤장수 김 씨
연인산
첫눈
지렁이
나팔꽃, 이별을 연주하다
세입자들
버려진 휴대폰
소나무 자폐증
또 다른 계산기
별의 속도
연주암 오르는 길
양파론
해 설 ― ‘몸’에 깊이 새겨진 기억과 감각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