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사과 한 알을 먹었을 뿐인데 /강영은
굴러갔다
동쪽 끝에서 서쪽 끝으로
단지, 사과 한 알을 먹었을 뿐인데
사과라는 말이 입 안에서 우주 밖으로
단숨에 굴러갔다
사과에게 사과하기도 전에
사과나무 가지를 후려치는
폭풍우와 눈보라에 닿았다
사막을 걸어가는 사과 장수처럼
사과의 처음에서 끝까지 완주한 적 없는데
사과 보다 먼저
사과의 일생에 다다랐다
토마토가 되는 것은 어떻겠니?
토마토처럼 붉은 사과에 도달 하려고
겉과 속이 다른 껍질을 모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사과가 먼저 가 기다리고 있었다
사과의 눈(目)이 먼저 가
기다리고 있었다
머나먼 과수원에 쏟아지는
봄 햇살
아직 싹 트지 않은
나를.
계간 『철학과 현실』 2018년 봄호 권두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