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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의 신작

단지, 사과 한 알을 먹었을 뿐인데

by 너머의 새 2019. 1. 11.




단지,

 사과 한 알을 먹었을 뿐인데 /강영은


 

굴러갔다

동쪽 끝에서 서쪽 끝으로  

단지, 사과 한 알을 먹었을 뿐인데

사과라는 말이 입 안에서 우주 밖으로

단숨에 굴러갔다  

사과에게 사과하기도 전에

사과나무 가지를 후려치는

폭풍우와 눈보라에 닿았다

사막을 걸어가는 사과 장수처럼

사과의 처음에서 끝까지 완주한 적 없는데

사과 보다 먼저

사과의 일생에 다다랐다 

토마토가 되는 것은 어떻겠니?

토마토처럼 붉은 사과에 도달 하려고

겉과 속이 다른 껍질을 모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사과가 먼저 가 기다리고 있었다

사과의 눈(目)이 먼저 가

기다리고 있었다  

머나먼 과수원에 쏟아지는

봄 햇살

아직 싹 트지 않은

나를.

 



계간 『철학과 현실』 2018년 봄호 권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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