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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그늘

으악새

by 너머의 새 2015. 9. 7.

으악새 /강영은




으악새 슬피 우는, 종결형의 가을이 매번 찾아왔으므로 나는 으악새가 호사도요, 흑꼬리도요, 알락꼬리마도요 같은, 울음 끝이 긴 새인 줄만 알았다 한라산의 능선 길, 하얀 뼈마디 숨겨진 길을 걸으며 억새의 울음소리를 잠시 들은 적은 있지만 내 몸의 깃털들 빠져나가 바람에 나부끼는 유목의 가을, 능선의 목울대를 조율하는 새를 보았다

生에 더 오를 일이 남아 있지 않다고, 농약 탄 막걸리를 목구멍에 들이 부었다는 작은 외삼촌, 한라산 중턱에 무덤 한 채 세운 그를 만나러 앞 오름 지나던 그날, 차창 너머 햇빛에 머리 푼 으악새, 출렁이는 몸짓이 뼈만 남은 삼촌의 손가락 같았다 어깨 들썩이며 우는 삼촌의 아으, 희디 흰 손가락, 그날 이후 손가락만 남아 손가락이 입이 된 새를 사랑하게 되었다

으악새 둥지를 내 몸에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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