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돌/강영은
눈썹씨름하는 돌을 만났다 밤새 울었는지 온몸이 젖어 있었다 눈자라기를 받아주는 떼받이처럼 바라보는 눈사부랭이가 따라 젖었다 아그려쥔 손금에선 물 흐르는 소리, 신성한 숲에 놓인 것처럼, 돌은 오전 8시의 숲속에 앉아 있었다
비비새가 울고 가고 모들뜨기 같은 나무 꼭대기에서 몇 안 남은 늦잎이 떨어졌다 모개진 낙엽 더미에서 실뱀 같은 햇살이 눈을 떴다 노숙한 슬픔에게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듯 모지랑이 같은 돌의 손가락이 반짝, 빛났다
매구 나오는 옛이야기도 외주물집 뿌다구니에 걸린 매지구름도 달룽하니 굳은 돌의 손을 잡고 바다로 갔다 어떤 슬픔은 손이 없어도 바다에 닿는다 수 억 년 매를 맞아도 아픈 줄 모르는 모오리 돌처럼, 처음부터 거기 놓여 있었던 것처럼,
오! 강 같은 슬픔 흘러간 지 오래 되었으나 비무리가 부려놓은 몸맨두리는 섭돌 같은 몸것을 잊지 못했다 굄돌처럼 댕댕한 시간의 손을 잡았으나 돌티 같은 존재 외에 삶을 지우는 어떤 시간도 미어지는 것.
어미는 오래전에 묵정밭에 묻혀 있단다, 무녀리를 잃은 짐승처럼 젖은 돌은 보기만 해도 울었다 만지지 않아도 풍경의 외곽을 적셨다
『모든;시』 2019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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