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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의 신작

블랙홀 탈출 익스프레스

by 너머의 새 2019. 7. 16.




블랙홀 탈출 익스프레스/강영은

 

 

 토로스산맥*을 넘는 기차는 시속 60킬로, 지금은 사라진 비둘기호처럼  완행이네 산줄기를 돌아가는 나의 여정도 완행이어서 쇠로 된 지붕에 날아가 앉은 비둘기 같네

 

 내 마음의 급행 속도를 창공에 던져버린 나의 비둘기는 과녁 없는 화살, 시간을 쓰러뜨릴 속도가 없어 꾸벅꾸벅 졸다가 멍하니 깨어 있다가

 

 타쉬칼레, 깎아지른 절벽 곡식 창고에 연습용 화살처럼 잠깐 꽂히네 암벽 과녁은 정다운 비둘기 집 같은데 높은 그곳에 아이로 돌아가는 시간이 들어 있나 봐,

 

 타쉬암발라, 꼭대기 창문 향해 할아버지 한 분 성큼성큼 올라가네 아이처럼 날렵하게 밀 창고로 들어서네 썩지도 않고 싹도 내지 않은 밀알이 10년 전 시간 품고 있네

 

 지나간 10년도 도착할 10년도 과녁이 되지 않으니 오늘이란 시간은 썩지 않나 봐, 나의 비둘기는 마지막 속도에 다다르네

 

 백단향 머금은 신의 도시가 세마젠의 육체 위에 수의와 무덤을 걸치네 틴누레의 흰 색깔과 검은색을 두른 나의 비둘기는 화살처럼 춤추네

 

 코니아여* 만인은 신 앞에 평등한가 당신이 만든 신은 내 발에도 맞는가, 빙글빙글 도는 춤사위에 끌려 시간 밖으로 이동하네

 

 당신 앞에 나를 낮추고 당신 앞에 가까이 가기 위해 삶과 죽음 사이로 오가는 나의 속도는 기쁨인가, 슬픔인가 이 질문은 어떤 속도로 여행을 마치는가,

 

* 터키 남쪽 지중해 연안을 동서로 뻗은 산맥

**Konya: 터키 중부 코니아 ()의 주도(州都). 이슬람의 한 종파인 메비레비의 종교춤 '세마 '의 근거지인 도시다 .

 

『발견』 2019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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