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머의 신작 59 순간의 나무 순간의 나무 강영은 앗, 하고 비명을 지르는 순간, ㅇ와 ㅏ와 ㅅ이 제각각의 속도로 튀어나갔다 분절음에 틈이 생겨난 순간, 구경꾼이 몰려오고 엠블런스가 달려왔다 거기에서 여기로 나를 밀어낸 찰나의 얼굴 본 것 같은데 쓰나미에 휩쓸린 사람처럼 폭풍우에 휘말린 사람처럼 .. 2019. 6. 21. 언어言語 언어言語/강영은 키스하기 전의 치약 같은 거 키스한 뒤에 남는 치약 냄새 같은 거 입술끼리 나누는 중력 같은 거 입술만 남은 위성 같은 거 소모되지 않는 구름 같은 거 소모되는 빗방울 같은 거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오는 묘색妙色*같은 거 아닌데, 아니라는데 꽃과 나비가 주고.. 2019. 4. 7. sad movies* sad movies*/강영은 비 내리는 주말에는 극장에 가자 변두리 극장의자에 기대어 앉아 지나간 한때 상영하자 자막에선 빗방울 튀기지 않는 비가 죽죽 내리는데 빗방울은 언제나 주인공을 적시지 비 내리는 주말에는 극장에 가자 변두리 극장의자에 기대어 앉아 되감기는 필름에게 .. 2019. 4. 7. 갈마(羯磨)*의 바다 갈마(羯磨)*의 바다/강영은 작살이 꽂혀도 달아날 줄 모르는 너는 착한 짐승 나의 입술에 꽃으로 핀다 벌어지지 않는 꽃잎 위에서 너의 침묵은 외마디 비명을 얻을 뿐이지만 붉게 핀 흉터에서 나의 바다가 완성 된다 너는 푸르고 깊은 바다를 장식(裝飾)한다 동물과 구별되고 싶은 나를.. 2019. 4. 7. 상상 연습 상상 연습/강영은 해남 사는 모 시인이 고구마를 보냈다 화산에서도 고구마가 나나요? 화산 고구마라 쓰인 상표를 보고 준이가 묻는다 준이는 가위로 만든 튀김, 비닐 스파게티, 진흙쿠키를 먹는 아이 화산처럼 불 뿜는 공룡을 좋아한다 불로 만든 고구마야, 껍질이 빨갛지 않니? .. 2019. 4. 7. 인화(印畵) 인화(印畵)/강영은 엄마 입술은 검게 드러나네 엄마가 입은 초록 저고리는 더 검게 봄빛을 드러내네 엄마가 꺾어준 동백꽃 모가지를 뚝뚝 따고 있었지만 산으로 간 외삼촌과 뭍으로 떠난 아버지 사이에서 빼꼼히 내다보는 흰색이 싫어, 엄마 눈 코 입에 돋아나는 흰색이 싫어, .. 2019. 4. 7. 남겨진 자 남겨진 자/강영은 밤이 납덩어리인줄 모르고, 당신과 나는 별 떨기를 세고 있었다 별빛에 목을 맨 나비처럼 당신은 당신이 입은 스웨터를 올올이 풀고 내가 모르는 밤하늘로 날아갔다 언제 생겼지 이, 커다란 물웅덩이 파문(波紋)조차 없이 나는 다만 새까맣게 변한 얼굴로 속눈썹 같은.. 2019. 4. 1. 고사은거도(高士隱居圖) 고사은거도(高士隱居圖)/강영은 -종이에 담채, 102.7×60.4cm, 간송미술관 소장. 뾰족이 솟은 산과 늙은 소나무에 둘러싸인 한 칸 누옥이 없었다면, 매화를 아내로, 학을 자식으로 사슴을 심부름꾼으로 삼은 옛사람도 옛사람을 그린 화가도 옛사람을 품은 나도 없었으리라. 붓끝에.. 2019. 4. 1. 펭귄우체국 펭귄우체국/강영은 빨간 창문과 검정 칠을 한 지붕을 가졌다고 우체국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젠투 펭귄 모여드는 곳, 그곳에서 당신을 기다릴래요 당신은 틀림없이 뒤뚱거리며 얼음 위를 걸어올 테니까요 당신 대신 엽서가 온다고 해도 걱정 없죠 도둑 갈매기와 세찬 바람, 눈보라까지 .. 2019. 4. 1. 이것 이것/강영은 이것은 개랑인가 굼뉘인가 노루막이 너테인가 느루느루 흘러가는 뉘누리인가 도린결의 도래샘인가 노해의 마믅소리인가, 이것은 볕늬에 잘 익은 보늬인가 소솜 속새에서 새어나오는 새물내인가 손샅 사이 허공 중에 아그데아그데 매달린 열매의 아늠인가 미음 돌 듯 묏채.. 2019. 4. 1. 백비(白碑) 백비(白碑)/강영은 내 몸에 함부로 손대지 마라. 비문을 정으로 쪼아 뭉개고 땅에 묻어버린 자, 비문에 이름 새기기를 좋아하는 자, 비문을 무덤의 표석으로 세우고 싶은 자. 왼쪽으로 가자고 왼쪽 옆구리를 차는 자, 오른편이 낫다고 오른쪽 팔뚝을 잡아당기는 자, 이쪽도 저쪽도 아니.. 2019. 4. 1. 화산탄(火山彈) 화산탄(火山彈)/강영은 이리를 닮은 오름 길에서 너는 상냥한 이리처럼 나뭇가지를 부러뜨렸어 울음 끝에 툭, 던져진 벌레처럼 숨을 멈추었지만 눈썹을 동여맨 덩굴의 방향에서 터져나오는 울음소리, 삼나무 숲길에선 진초록 이끼들이 기어 나왔어 굉장하지? 득의를 얻은 네 웃음 .. 2019. 4. 1. 이전 1 2 3 4 5 다음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