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악*/ 강영은
이승악*/ 강영은 공동묘지 지나 닭 모가지 비트는 토종닭집 지나 벼슬 없는 닭처럼 이승에 든다. 삼나무 팽나무, 새덕이, 죽나무, 생달나무, 참식나무, 꽝꽝나무, 산딸나무, 산뽕나무, 굴거리나무, 사스레피나무, 개서어나무, 개섬벚나무, 윤노리나무, 터널을 이룬 숲속에서 이름 없는 산새처럼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건너간다. 제주 산수국, 보라빛 꽃망울 들인 허파꽈리가 부푸는데 이승에서 이승을 맛보고 싶은 여러 겹의 육신들, 저승을 다녀온 것처럼 왁자지껄 다가온다. 이승에서 이승이 보이지 않는다고, 투덜대며 다가온다. 혼자 걸으니 무섭지 않나요? 탁탁거리는 스틱들, 배낭 없는 나를 무거워한다. 살쾡이 한 마리, 키 낮춰 숲길 건넌다. 마음을 할퀴고 가는 생각이 이승이라면, 세상 같은..
2024. 1. 20.
시간의 나비/강영은
시간의 나비/강영은 말랑말랑한 젤리를 먹을 때처럼 슬픔을 아껴먹던 소녀를 기억한다. 눈가엔 흐느낌이 번져 있었지만, 젤리 껍질을 벗긴 것처럼 빛나던 눈빛 산사(山寺)의 종소리가 내려와 오후 네 시의 마음에 울릴 때까지,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입속말 되뇌이던 소녀를 기억한다. 소녀의 슬픔을 기억할 필요는 없다. 소녀의 머리칼에 앉아 있던 분홍 리본이 시간의 나비처럼 날아왔으므로 기억이 저 혼자, 날개를 접은 나비처럼 시간을 접어보는 것이다. 실밥이 너덜너덜해진 리본처럼 나는 자주 울고 자꾸 실패하지만, 분홍으로 물드는 저녁이 되면 시간 속에 사라진 소녀를 불러온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흰 무명 커튼이 펄럭이는 어두운 창가에서 내 가 왜 울었는지는 중요하지가 않다. 『시와..
2023. 11.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