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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는/이수익 갈대는/이수익 저 갈백색 물결이 부드럽게 일렁이고 있는 일은 겨울 햇살 아래서는 참으로 보기 드문 경이로움이다. 모두가 허무하게 무너져 내린, 척박한 1월의 변두리 지역에서 살아 있음을 저리도 분명하게 드러내어 주는, 그 상대적 일체감이 죽어 있는 물체들 사이에서 환히 빛을 낸.. 2019. 6. 21.
다시 番外에 대하여/ 정진규 다시 番外에 대하여 -律呂集 80 정진규 문득 돌아보니 눈길이 가 닿지 않았던 것들이 홑앗이들이 널려있다 같은으아리 꽃 같은 것도 홑앗이로 피고 있는 으아리꽃들이 많다 내팽겨쳐져 저물고 있다 차마 쳐다보기 힘들다 番外다 나의 공책엔 等外라거나 列外라는 말이 적힌 대목이 있다 .. 2019. 6. 21.
꽃멜/이명수 꽃멜/이명수 해질 녘 모슬포 부둣가 한 귀퉁이 아들이 갓 잡아온 멸치를 할머니가 손질해 말리고 있다 은빛 물결 잦아들면 멸치는 숨죽여 몸을 뒤척이고 노을빛에 할머니가 꽃처럼 곱다 5천원주고 꽃멜 한 봉지 얹어 배낭에 넣었다 몇 백 마리 멸치 온기가 한기 어린 내 등을 따뜻이 덥혀.. 2019. 6. 21.
[영상시]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주병율의 문학TV_cine-poem ​ [영상시]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강영은 https://www.youtube.com/watch?v=-vYkXn7uFv4&t=49s 위 주소를 클릭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강영은 당신은 나를 건너고 나는 당신을 건너니 우리는 한 물빛에 닿는다 눈발 날리는 저녁과 검은 강물처럼 젖은 이마에 닿는 일떠나가는 물결 속으로 여러 번 다녀온다는 말이어서발자국만 흩어진 나루터처럼 나는 도무지 새벽이 멀기만 하다 당신의 표정이 흰색뿐이라면 슬픔의 감정이 단아해질까비목어처럼 당신은 저쪽을 바라본다저쪽이 환하다 결계가 없으니 흰 여백이다 어둠을 사랑한 적 없건만 강둑에 앉아 울고 있는 내가 낯설어질 때 오래된 묵향에서 풀려 나온 듯 강물이 붉은 아가미를 열고 울컥, .. 2019. 6. 21.
정일남 시인이 읽은 墨梅 사진 /김경성 http://blog.naver.com/jungin3507/220317692720 墨梅 ​ 강 영 은 휘종의 화가들은 詩를 즐겨 그렸다 산속에 숨은 절을 읊기 위하여 산 아래 물 긷는 중을 그려 절을 그리지 않았고 꽃밭을 달리는 말을 그릴 때에는 말발굽 에 나비를 그리고 꽃을 그리지 않았다 몸속에 절을 세우고 나 비.. 2019. 4. 26.
2015년 『좋은시』고독에 대하여 고독에 대하여/강영은 ​ 내 몸속에 서천꽃밭이 들어있다. 이름도 낯선 도환생꽃, 웃음웃을꽃, 싸움싸울꽃들로 만발하다. 깨어진 화분에 ​몇 포기의 그늘을 옮겨 심는 나는 그 꽃밭을 가꾸는 꽃 감관 ​ ​ 꽃 울음 받아 적는 저물녘이면 새가 날아가는 서쪽 방향에 대해 붉다, 라고 쓴다... 2019. 4. 26.
산다는 것은 -생리학 백화점/강영은 생리학 백화점/강영은 소꿉놀이하던 어린 각시의 치마 속에 막대사탕을 꽂은 친절한 슈퍼맨은 제 얼굴을 박살냈죠. 조각난 얼굴은 공터에 버렸죠. 슈퍼맨을 법정에 세운 건 깨어진 거울, 끈끈해진 바람이 현장 검증을 시작하자 핏빛 구름이 혐의를 벗었죠. 수은 칠 벗겨진 거울의 등뼈에.. 2019. 4. 26.
언어言語 언어言語/강영은 키스하기 전의 치약 같은 거 키스한 뒤에 남는 치약 냄새 같은 거 입술끼리 나누는 중력 같은 거 입술만 남은 위성 같은 거 소모되지 않는 구름 같은 거 소모되는 빗방울 같은 거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오는 묘색妙色*같은 거 아닌데, 아니라는데 꽃과 나비가 주고.. 2019. 4. 7.
샨티Shantih* 샨티Shantih*/강영은     주여, 이 문장에 평화를 주소서 바구니를 든 손은 가난하고 얼굴은 시들었으나 풍성한 열매를 따고 가는 가을의 얼굴처럼 기쁨에 들뜬 언어를 주소서 고단한 햇빛과 바람의 가시를 몸에 들였으나 폭풍우를 견뎌낸 심장은 튼튼하니 한 톨 한 톨 밤을 떨구는 우주를 받들게 하소서 매 순간, 헤어지는 땅의 시간을 감당했으니 홀로 서 있는 밤나무의 슬픔을 이해하게 하시고 먹을 것을 얻은 다람쥐처럼 그 밤의 깊이에 다다르게 하소서 빈 들녘에 울려 퍼지는 갈가마귀 소리가 노래의 도구(渡口)임을, 필생(筆生)의 울음이 필생의 노래임을, 루비콘 강을 건너는 입술에도 노래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하여, 물결을 저어가는 구음(口吟)이 내 과업임을 알게 하소서 나의 노동이 하늘과 맞닿은 지평선을 지날.. 2019. 4. 7.
sad movies* sad movies*/강영은 비 내리는 주말에는 극장에 가자 변두리 극장의자에 기대어 앉아 지나간 한때 상영하자 ​ ​자막에선 빗방울 튀기지 않는 비가 죽죽 내리는데 ​​빗방울은 언제나 주인공을 적시지 비 내리는 주말에는 극장에 가자 변두리 극장의자에 기대어 앉아 되감기는 필름에게 .. 2019. 4. 7.
갈마(羯磨)*의 바다 갈마(羯磨)*의 바다/강영은 작살이 꽂혀도 달아날 줄 모르는 너는 착한 짐승 나의 입술에 꽃으로 핀다 벌어지지 않는 꽃잎 위에서 너의 침묵은 ​ 외마디 비명을 얻을 뿐이지만 붉게 핀 흉터에서 나의 바다가 완성 된다 너는 푸르고 깊은 바다를 장식(裝飾)한다 동물과 구별되고 싶은 나를.. 2019. 4. 7.
상상 연습 상상 연습/강영은 해남 사는 모 시인이 고구마를 보냈다 화산에서도 고구마가 나나요? 화산 고구마라 쓰인 상표를 보고 준이가 묻는다 준이는 가위로 만든 튀김, 비닐 스파게티, 진흙쿠키를 먹는 아이 화산처럼 불 뿜는 ​공룡을 좋아한다 ​ ​불로 만든 고구마야, 껍질이 빨갛지 않니? .. 2019. 4.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