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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위적인 딸에게 보내는 편지 전위적인 딸에게 보내는 편지/강영은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패션 아방가르드의 프론티어, '섹스'라는 이름의 부티크를 연 그녀는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때로는 도발적인 문양을 날개에 새긴다. 그녀의 심볼은 타탄체크, 종족과 계급을 나타내는 고전적인 무늬가 사람을 차별한다는 말 인.. 2015. 9. 7.
으악새 으악새 /강영은 으악새 슬피 우는, 종결형의 가을이 매번 찾아왔으므로 나는 으악새가 호사도요, 흑꼬리도요, 알락꼬리마도요 같은, 울음 끝이 긴 새인 줄만 알았다 한라산의 능선 길, 하얀 뼈마디 숨겨진 길을 걸으며 억새의 울음소리를 잠시 들은 적은 있지만 내 몸의 깃털들 빠져나가 .. 2015. 9. 7.
왕소금 바다 왕소금 바다 /강영은 눈발 날리는 제주바다를 본다 싸르락싸르락 구르는 눈발이 동치미를 담그는 왕소금 같다 흩어지는 그것들을 손바닥에 받아드니 어머니 모습이 어룽진다 하루 종일 바닷가를 헤매다 온 내 종아리에 물결무늬를 새겨 넣은 어머니, 시퍼렇게 얼어붙은 물결무늬는 동치.. 2015. 9. 7.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강영은 일요일 오후면 나는 즐거운 양말, 점묘법 댄스를 추며 그랑드자트 섬으로 날아갔지. 그곳에서 나는 꽃 한 송이 피워낼 줄 모르는 엄마의 꽃무늬 양산을 펴드는 대신 엄마가 깜짝 놀랄 멋진 우산과 데이트 했지. 커다란 박쥐우산 속에서 뾰족한 턱을 .. 2015. 9. 7.
이상 기온에 대한 모놀로그/ 이상 기온에 대한 모놀로그/강영은 이곳은 한창 꽃 피는 계절인데 배추흰나비 같은 봄눈 날린다. 눈발 날리는 한 쪽 바닥이 슬퍼진다 . 다른 쪽 슬픈 바닥이 꼭 그만큼 줄어든다. 슬픔은 좌우가 다르다 슬픔 사이엔 통곡의 벽, 벽과 벽 사이, 당신과 나 사이, 우린 하나인데 하나 뿐인 우주.. 2015. 9. 7.
달콤한 그늘 달콤한 그늘/ 강영은 탑골 공원 벤치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빨고 있는 아이, 땀투성이 이마에 때 국물까지 질질 흘리면서 아이스크림을 빨다 말고 문득, 나를 쳐다 본다 내가 아이스크림이 된 것처럼 흠칫 놀란다 바람은 볼록하니 볼을 부풀리고 구름 아이스크림은 유리창에 줄줄이 흘러내린다 아이의 입 속으로 와르르 내가 빨려든다 세상이 온통 아이스크림이라는 듯 입술에 온 힘을 싣는 저, 집중력! 세상에서 가장 신나는 일이 빠는 일이라는 듯 세상의 어떤 그늘도 맛있다는 듯 내 젖줄을 쪽쪽쪽, 쭉쭉쭉, 빨아먹던 아가에게 몸을 통째 내주던 그때 진작 알았다 먹는 입에서 먹여주는 입이 된 나는 그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그늘이었다 내 몸의 땡볕조차 저절로 사라지는 그늘이었다 두 볼을 고무풍선처럼 불었다 놓을 때 마다 시원.. 2015. 9. 7.
그를 훔치다 그를 훔치다 /강영은 유성빌딩 현판에 별 하나 걸려 있다 그 별의 이름은 유성이지만 대리석 빌딩에 단단하게 못 박혀 있어 흐르지 못 한다 별빛 흐려지는 날, 그 별을 훔치는 남자가 있다 부드러운 목면에 침 퉤퉤 뱉어 광약을 매기고 손바닥의 얼룩이 없어질 때까지 별을 훔치면 별은 먼.. 2015. 9. 7.
詩人 詩人/강영은 천리 밖도 단숨에 낚아챈다는 검 한 자루 둥글게 허공을 베며 난다 차마 고도를 넘어 온 바람에 그리움의 날을 세워보지만 무디어진 칼날은 새털구름에 박혀 서럽게 운다 사랑을 찾아 고도를 높였던 날들은 갔다 지금은 다만 허공무덤을 뒤지는 나날, 어디서 싱싱한 날 것을 .. 2015. 9. 7.
분열된 존재의 허상과 탈주체화의 시/박남희 그림자연극/강영은 그는, 겨드랑이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가지고 연극을 상영한다 오른편 그림자를 아내라 하고 왼편 그림자를 애인이라 부른다 제각각의 몸을 가진 그녀들이 서로 만나거나 겹쳐지는 일은 드물다 그가 품고 있던 생각들, 혹은 잠재적인 형상 속에서도 역할 분담이 필요.. 2015. 9. 7.
양파論/강 수(시인) 양파論/강영은 몇 겹의 비밀로 이루어진 몸이 있다 흙보다 더욱 캄캄한 시간으로 제 안을 감싸는 무덤처럼 겹겹이 덮인 생의 내력으로 지탱되는 몸 지상의 모든 길들 돌아 와 하얀 어둠의 옷 하나 씩 벗을 때마다 더욱 작고 단단해지는 그, 눈부신 부재의 중심에서 나는 더 이상 만져지지 .. 2015. 9. 7.
눈먼 박쥐의 돌진에서 눈부신 부재의 중심으로/ 신주철(강남대 겸임교수) 강영은의 시 11편을 접하고 촌평을 위해 어느 때와는 다른 '고감도의 안테나'(버려진 휴대폰에서)를 세워야 했다. 그러나 애당초부터 불량기가 있던 안테나는 여름 장마에 녹슬어 잇었고, 게다가 엉뚱하게도 가을산의 현란한 발성에 눈길을 빼앗시곤 해서 11편의 작품의 발신음을 해독하.. 2015. 9. 7.
존재의 어두운 강물을 흘러가는 나비 혹은 거지/ 고명수(동원대 교수) 바늘들/강영은 앞산 비탈을 오르는 잎갈나무* 가지 끝 저, 바늘들 바람이 몸통을 지날 때마다 우수수 떨어진다 끊임없이 수액을 퍼 올려 침침한 하늘을 깁기도 했던 그것들 지층 깊은 곳에 뿌리내린 단단한 슬픔을 끌어올려 제 안 어딘가 가늘고 뾰족한 생각의 끝을 만든다 바람이 지날 .. 2015. 9.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