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비단구렁이47 그림자 연극 그림자 연극/강영은 그는, 겨드랑이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가지고 연극을 상영한다 오른편 그림자를 아내라 하고 왼편 그림자를 애인이라 부른다 제각각의 몸을 가진 그녀들이 서로 만나거나 겹쳐지는 일은 드물다 그가 품고 있던 생각들, 혹은 잠재적인 형상 속에서도 역할 분담이 필요.. 2015. 9. 7. 알밤장수 김씨 알밤장수 김씨/강영은 오늘도 그는, 팔다 남은 알밤 하나를 지그시 깨문다 싱싱한 날밤을 한 입 깨물자 물컹거리는 것이 혀끝에 와 닿는다 이 벌레 씹은 맛이라니! 고름처럼 뭉개진 하얀 속살에 그의 혀가 움칠, 뒤로 물러선다 단단한 과육의 허를 찌르는 물렁한 힘의 본체는 캄캄한 굴헝.. 2015. 9. 7. 첫 눈 첫 눈/ 강영은 신길동 산 144번지 옷을 훌훌 벗어 던진 가을이 진압군처럼 밀려왔다 뒷산 상수리나무 숲에는 갈기갈기 찢겨진 낙엽더미가 흘러 넘쳤다 밥도 빵도 되지 못하는 도토리가 마른 젖꼭지를 물리고 있는 산동네를 돌며 폐품을 뒤지던 고물상 김씨가 딱딱하게 굳은 사내를 찾아냈.. 2015. 9. 7. 지렁이 지렁이/강영은 철쪽과 매발톱 꽃 사이 지렁이 한 마리 통통한 몸을 햇빛에 적나라하게 드러내놓고 직선으로 곧게 뻗어 있었다 입에서 항문까지 막힘없는 삶을 누렸다는 듯 햇빛 속에 가닥가닥 드러난 핏줄들은 어둑한 삶을 밝히는 전선줄처럼 환하게 몸을 켜들고 있었다 어떠한 빛마저 .. 2015. 9. 7. 나팔꽃, 이별을 연주하다 나팔꽃, 이별을 연주하다/강영은 7월의 난간 위로 덩굴손이 기어올랐다 아침이면 검푸르게 흔들리는 그들의 침실에선 푸르고 붉은 나팔꽃들을 피워냈다 한낮의 태양 아래 단단하게 오므리;고 있는 그 꽃들이 주름진 내막은 알지 못햇지만 여름 내내 햇살이 뜨거웠고 밤이 길었다 새벽이.. 2015. 9. 7. 세입자들 세입자들/ 강영은 뜨거운 양철 지붕위의 고양이*를 보고 있는 눈 밖의 창 너머 고양이 두 마리 허방을 건너뛴다 허공의 깊이를 훌쩍 넘어 오늘도 무사히, 온 동네의 지붕을 주름 잡는 그들이 담벼락을 지나자 장미넝쿨의 가시들, 무참히 짓밟힌제 몸의 아픔에게로 그늘을 이동 시킨다 땡.. 2015. 9. 7. 버려진 휴대폰 버려진 휴대폰/강영은 길모퉁이 쓰레기통 속에 버려진 낡은 휴대폰을 본다 몸 구석구석 보이지 않는 길을 더듬다 가파르게 높아져 가는 음계를 헛디뎠는지 그녀의 날개가 부서져 있다 지상의 어떤 말보다 천배나 더 정밀한 성감대인 허공 속에서 익화(翼化)된 제 울음만 받아먹고 사는 .. 2015. 9. 7. 소나무 자폐증 소나무 자폐증/강영은 바람이 불고 리기다 소나무가 꿈틀대자 바람찬 소리를 귀담아 듣던 솔방울의 둥근 귓볼이 흔들리고 딱따구리에게 통째로 내맡겼던 옆구리의 통증 속으로 바늘잎들의 날카로운 말이 직선으로 쏟아진다 제 몸의 중추신경을 단단한 나이테로 묶고 있는 몸통은 정작, .. 2015. 9. 7. 또 다른 계산기 또 다른 계산기/강영은 책상 위 한 쪽 구석에 낡은 주머니 속을 계산해오던 그가 있다 내장을 드러내놓고 숫자 판은 으깨어져 아무리 눌러도 더 이상 아무 것도 셈할 수 없는 그는 한 때 그에게 의탁했던 지폐나 동전의 생을 헤아리는 막강한 힘을 갖고 있었다 영수증으로 증명되어지는 .. 2015. 9. 7. 연주암 오르는 길 연주암 오르는 길/강영은 관악산 연주암 오르는 길, 커다란 바위 위 민달팽이 한 마리 오가는 등산객들의 발자국 소리에 아랑곳 않고 꼼짝없이 앉아 있다 아니다, 전속력으로 움직이고 있는 달팽이를 내 몸의 속도가 측량하고 만 것인데 달팽이도 제 몸을 스쳐 지나간 나를 바람이거나 햇.. 2015. 9. 7. 양파論 양파論/강영은 몇 겹의 비밀로 이루어진 몸이 있다 겹겹이 덮인 생의 내력으로 지탱되는 몸 흙보다 더욱 캄캄한 시간으로 제 안을 감싸는 무덤처럼 지상의 모든 길들 돌아 와 하얀 어둠의 옷 하나 씩 벗을 때마다 더욱 작고 단단해지는 그, 눈부신 부재의 중심에서 나는 더 이상 만져지지 .. 2015. 9. 7. 이전 1 2 3 4 다음